9월 22일 영상교제 말씀
사무엘상 17장 5절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여러분 잘 아시는 이야기지만 옛날에 모순이란 말이 있지요? 모순이라는 말이 창 모(矛), 방패 순(盾) 이래서 모순인데, 그 모순이라는 말이 어떻게 유래가 되었느냐 하면 앞뒤가 맞지 않을 때 모순이라고 말하는데 왜 모순이 앞뒤가 맞지 않느냐 하면 옛날에 중국에서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창을 들고 나와서 팔면서 말하기를 “이 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얼마나 날카롭고 좋아서 어느 방패로 막아도 이 창은 방패를 뚫고 들어가서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이런 좋은 창을 사지 아니하면 여러분 정말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창을 잔뜩 설명을 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방패를 들고 나와서 “이 방패로 말할 것 같으면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어떤 창으로 찔러도 이 방패로 막으면 능히 막을 수 있는 것이 이 방패입니다.” 하고 방패하고 창을 소개했는데 옆에 있던 한 사람이 “그러면 양반,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 하고 물었거든요. 창은 어떤 방패도 다 찌를 수 있고 방패는 어떤 창도 막는다고 하니까 말이 안 맞지요. 모순이라는 말이지요. 전쟁은 창으로 찌르는 공격용 무기가 있고 막는 방어용 무기가 있는데 신앙생활에도 꼭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다른 건 다 몰라도 우리가 싸우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한 창을 썼을 때 막을 자가 전혀 없다는 것이고 반대로 아무리 적의 창이 날카로워도 하나님의 손길로 막으면 찌를 자가 없다는 그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입증해 주는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오늘 저녁에 읽은 이 성경 말씀은 사무엘상 17장에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인데 골리앗이 무장한 그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다. 이 어린갑이라는 것은 쇠비늘 갑옷을 말하는데 그 어린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다. 이제 그 골리앗 장군이 나올 때 자기를 무장한 그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그러니까 이제 골리앗을 지키기 위해서 머리에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고 방패든 자가 앞서서 방패로 딱 막아주면서 나가고 있더라 하는 게 골리앗의 무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너무 우스운 것은 그렇게 완벽한 무장을 한 것 같지만 다윗의 물맷돌 하나에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다 무너져 버린 게 너무 우스운 일이지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하는 이 전쟁은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어느 편에서 싸우느냐 그걸로 전쟁의 결말이 다 나는 거예요.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정말 내가 다윗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해 봤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내가 참 많은 전쟁을 했고 또 적이 나를 위하여 올무를 놓아 공격했고 나도 말씀으로 대적을 했는데 여러분 제가 그런 전쟁을 한번도 내가 져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 모든 걸 이끌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여러분 다윗이 정말 이마를 정확하게 때렸는데 이마에 놋투구를 썼는데 그 투구 바로 끝에 그 이마에 물맷돌이 박혔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몇 미리만 위로 왔으면 투구에 물맷돌이 맞아서 그냥 떨어지고 말았을 텐데 정말 완벽한 무장을 했지만 하나님 편에 서서 공격한 그 공격을 당할 자가 없고 적의 창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사람을 상케할 창이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명백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하다 보면 우리를 공격하는 적이 너무 강해 보이고 적의 창이 너무 날카로워 보이고 두려울 때가 참 많습니다. 반대로 적의 무장이 너무 완벽해 보여서 우리가 쓰는 이 무기가 정확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두려움에 젖을 때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한 가지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게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곧게 하신 걸 꾸부릴 자가 없고 하나님이 굽게 하신 걸 곧게 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그것 하나로 말미암아 모든 데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들이 옛날 장팔리에 있을 때나 김천에 있을 때나 군대에 있을 때나 대구에 있을 때나 어느 시대에고 사탄의 역사가 있었고 반대하는 일도 있었고 대적하는 일도 많았지만 그러나 그런 역사가 우리 마음을 두렵게 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나를 넘어뜨릴 수 없는 건 내가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고 하나님 품안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떠났을 때, 주님 밖에 있을 때, 하나님의 테두리를 떠났을 때 우리가 넘어질 수 있고 쓰러질 수 있고 망할 수 있지, 하나님 품안에 있을 때 우리를 넘어뜨릴 자가 아무도 없으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공격할 때 우리를 막을 자도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사도행전 23장을 읽으면서 좀 이야기를 하다가 왔는데 23장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40명이 동맹을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바울을 지킬 창군 200명, 보병 200명, 기마병 몇십 명, 그래 바울을 지켜가지고 23장 마지막 절에 보니까 바울이 헤롯 궁에서 평안히 쉬고 있는 그 모양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재미있는 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절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는 그 40명이 밥 먹을 때 어떻게 먹었는지 그게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들이 다 굶어죽지는 않고 틀림없이 밥을 먹었을 텐데 그렇게 맹세한 그 맹세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하나님이 만드시는 모양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정말 그 많은 사람 중에 혼자 단신이었고 아무도 그를 지켜주는 자가 없었고 그 모든 사람이 바울을 죽이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했을는지 몰라도 그들은 바울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다윗과 사울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왕이었고 모든 권세를 가지고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사울이 다윗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왜?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도 때때로 불안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때때로 어려울 것처럼 보이고 망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형편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를 넘어뜨리고 쓰러뜨릴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이 우리를 지키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해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위해서 전세계에 흩어져 일하다 보면 때때로 ‘아 나는 죽었구나.’ ‘난 이제 망하겠구나.’ ‘난 끝장이구나.’ 그럴 때가 참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일들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지내놓고 보면 주님이 완벽하게 우리를 지키셨기 때문에 온전함을 입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창을 팔고 방패를 팔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의 검으로 찌를 때 막을 방패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믿음의 방패로 막았을 때 뚫을 창이 없습니다.” 그렇게 팔아야 올바른 창 장사가 되고 방패 장사가 됩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으시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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