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영상교제 말씀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는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경을 조금 이야기하면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어디를 갔느냐 하면 아덴이라는 곳을 갔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가서 보니까 아덴 사람들이 종교성이 굉장히 많고 그래가지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주로 자기가 옛날에 구원받기 전의 간증을 이야기하고 간증으로부터 시작해서 복음 이야기하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덴에 가서는 바울이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스도이고 철학자들, 유명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바울이 상당히 지식적으로 철학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내가 너희들을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다니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하고 새긴 단도 보았는데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한 신들을 내가 알게 하리라. 천지의 주이신 아버지는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고...” 그런 막 아주 지식적이고 그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 철학적인 이야기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다른데 가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크게 역사해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대적하고 핍박하고 그런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는 거기 몇몇 사람이 믿긴 해도 너무 역사도 없었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아 바울이 상당히 마음에 착잡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가게 되었는데 고린도 전서 2장에서 바울이 말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이제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왜냐하면 아덴에서 좋은 말로, 듣기 좋은 지혜로운 말로 했는데 거기서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바울이 거기에 대하여 마음에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린도에 들어갈 때는 “그래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마음에 작정을 했다는 거지요. 왜? 내가 잘 아는 지식으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잘 들을 것 같고 지혜로운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것 같고 역사를 할 것 같았는데 그 역사는 결국 내 역사니까 아무 의미가 없었고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들어갈 때 굉장히 두려웠다는 거예요. 내가 고린도에 가서 혹시 잘못해서 내가 정말 순수한 하나님의 복음 말고 내 지혜를 이야기하게 되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지식을 받지, 능력의 믿음 안에 있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서 사도바울은 심히 떨었다, “내가 두려워 떨었다.” 그렇게 바울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세상에서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구원받는 것도 사업하는 식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잘 될 줄로 알고 있고, 공부를 많이 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분들은 아 내가 신앙 생활하는 것도 교육받는 식으로 하면 잘 될 줄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말 잘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하기보다 말로 다 때워 넘기려고 하고, 수단이 좋은 사람은 수단 가지고 신앙하면 잘 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거지요. 사도바울이 이제 여기서 말하기를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자기가 가진 지혜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들이 지식에 머물지, 반대로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증거해서 그 사람이 지식보다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있는 걸 보면서 ‘아 내가 지혜로운 말 자체가 역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의지한 능력 그 자체가 역사하는구나.’ 사도바울은 그 사실을 마음에 깊이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잘난 부분, 자기가 말 잘하는 부분, 자기 지혜로운 부분, 그런 부분을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게 나타나게 되고 그런 게 나타나면 사람들이 사도바울의 지혜에 머물러 있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것 때문에 심히 두려워하며 떨었다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믿음 없으면서 말로 그럴듯하게 넘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말이 신앙이 되는 건 아닙니다. 내 지혜나 재치로 내 성실함으로 내 노력으로 해서 신앙생활 잘 되는 것처럼 이끌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그런 건 임시 볼 때는 지혜로운 것 같고 능력 있는 것 같고 그렇지만 그게 다 무익한 걸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저는 구원을 받고 거듭난 뒤에 내가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내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을 참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게 하나도 내게 덕이 되지 아니하고 유익이 안 되는 사실을 알고 나도 내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기로 마음에 한번 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수단과 방법을 버리니까 내가 이제 그런 수단과 방법이 나올 때 ‘아 이건 안 되는 건데...’ 반대로 다른 사람이 수단과 방법을 쓰는 걸 보면 ‘아 저건 저래가지고 안 되는데...’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되니까 내 방법과 수단 이 자체가 나올까봐 두려워지고 내 마음에 그런 지혜가 나와도 그걸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되더라는 거지요.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들어갈 때 굉장히 두려워하며 떨었다고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이 일하지 않아도 인간적인 면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일들이 많고 말로 꾸며서 굉장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무익한 것들이고 망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을 했다고 하는 말씀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 그 주님 한분을 믿고 주님만 의지하지 인간적인 것들이 좋아보여도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 벗고 주님만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그때 하나님이 힘 있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덴에 복음을 전하면서 자기의 지혜로운 말이, 자기의 성실한 것이 아무 의미 없는 걸 깊이 깨닫고 고린도에 들어갈 때 막 두려워하며 떨었다고 그랬습니다. ‘또 내 지식이 나오면 어떡하지? 내 방법이 나오면 어떡하지? 내 수단이 나오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마음에 정하기를 “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마음을 딱 정해버렸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사단에게 속아서 말 잘하고 지혜롭게 하면 뭐가 일어날 것 같지만 바울처럼 사실 깨닫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일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바울처럼 내 방법이나 지식이 나타날 걸 두려워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만이 힘 있게 역사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정말 마음을 정하고 나를 믿지 아니하는 그런 삶이 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도 힘 있게 역사하실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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