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문학- 이달의 글 당선작
이달의 글 당선작은 -쉴만한 물가-부문에서 “심 숙현의 여리고성과 같은 우리아버지........”와 -깨트려진 옥합-부문에서 “최 은진의 여름이야기”입니다
-쉴만한 물가-부문은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하는데 “심 숙현의 여리고성과 같은 우리아버지........”는 모든 것을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이글에서 그의 발전가능성을 볼 수 있었고 수필작품을 기다려보고 싶습니다.
-깨트려진 옥합-부문은 후보작 “김 도곤의 예수그리스도”가 매우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시형을 갖추어진 장점이 있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깊은 고찰(考察)과 구체적인 표현을 더한다면 정금 같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최 은진의 여름이야기”는 정성을 많이 들인 글이나 너무 인위적(人爲的)인 색채가 짙은 것과 자기마음의 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쉬움이었습니다. 생활 속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끄집어내는 부드럽고 진지한 글을 기대해봅니다. 당선된 분에게 문화 상품권(₩10,000)을 우송해드립니다.
글을 올려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쉴만한 물가-여리고성과 같은 우리아버지....... 심 숙현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거늘...
우리 아버지.. 여리고 성과 같을찌라도 일곱번 돌면 무너질수밖에 없는 티끌....

요번주 초에 남인천교회에 집회가 있어 아버지를 초청하려고 갔습니다. 제 마음도 아닌 종들의 마음에 이끌려서...

그러나 아버지는 너무나 큰 성과 같았습니다.멀리 강릉서 딸이 왔는데도 만나주지도 않고 물귀신처럼 집회 끌고 가려고 한다하시면서 사단이 그마음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 불쌍한 우리 아버지...
결국 집회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여리고 성이 무너질때까지 돌아야 하지 않겠냐는 황사모님말씀....
아무리 견고해도 무너질 성이기에 기도하며 묵묵히 성을 돌고왔습니다.

내 마음같아선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너무나 견고한 성!
주님의 마음에선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너무나 약한 성!

운화문학형제자매님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깨트려진 옥합-여름이야기 최 은진

나에게는, 나무와 맑은 햇살과 서늘해진 공기가 사방에서 불러대는 소란스러운 가을보다 땡볕이나 폭우에 쫓겨 지붕 아래로 숨어드는 여름이야말로 진정 독서의 계절이었다. 책을 고르며, 혹은 첫 장을 펴며 나는 기대에 찬다. 책 속에서 무엇인가 찾을 수 있기를, 최소한 더위를 잊을 재미라도 발견할 수 있기를.
나는 책의 첫 장을 넘길 때마다 막연한 기대에 차고 책을 덮으며 한숨을 쉬곤 했다. 괜찮은 경우란 것이 첫 장을 넘길 때 가졌던 막연한 기대를 잊을 정도로 내용에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막연한 기대를 다음으로 미뤘다.
책을 열며 가지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란 것은 인생에 관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인생에 대해 무엇인가를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인생을 알게 하는 무엇인가란 것이 도대체 있는지조차 막연했다. 그런 것을 말해주는 책도 영화도 없었고, 나와 같이 무엇인가에 목말라하는 마음을 책 속에서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잘 고른 책인 셈이었다.
여름의 목마름을 달래준 책 중에 하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좀머 씨 이야기’였다. 장 자끄 상뻬의, 귀엽지만 심오한 삽화를 보는 즐거움도 컸고 무언가에 쫓기듯 걷는 좀머 씨의 모습에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내 마음의 모양도 겹쳐졌다. 여름과 함께 이 책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는 좀머(Sommer, 독일어로 여름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여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마음만 먹으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초등학교 일학년이다. 윗동네에 사는 좀머 아저씨는 직업도 없이 새벽부터 밤낮 엄청난 속도로 걷기만 하는 사람이다. 이유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숨을 헐떡이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쫓기듯이 걸어 다닌다. 그가 제대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은 딱 한 번뿐이다. 비와 우박이 억수같이 내린 날 아버지가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고 몇 번이나 권했을 때,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했던 말.
그의 뒤를 쫓는 것은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죽음이었다. 그는 일생동안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허겁지겁 걷는 것으로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은커녕 그 공포를 잊을 수도 없었다. 주인공 ‘나’는 고등학생이 된 후에, 좀머 씨가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하는 것을 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전에 들었던 “그러니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라는 말, 그리고 언제가 보았던 공포에 질린 커다란 눈동자의 얼굴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그를 말려 살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다시 죽음에 쫓겨 걸어 다니라고? 그리고 그때쯤에는 고등학생으로 자란 주인공 ‘나’도 죽음의 공포와 인생의 공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구원받기 전에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이 너무 궁금하고 답답하고 두려웠다. 다가올 죽음으로 내 인생은 온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데, 정말 그게 다라면 인생은 도대체 왜 존재해야 된단 말인가. 그때 내 마음은 좀머 씨와 같이 무작정 헤매고 다녔다. 애써 외면하려하지만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죽음에 쫓겨 다닌다. 성경도 사람은 ‘일생에 매여 종노릇한다’고 하지 않는가. 공부나 일에 몰두하고, 놀이에 빠지고, 음악에 심취하는 것이, 나쁜 경우라면 벗어날 수 없는 죄악에 빠지는 것이 좀머 씨의 걷기와 같지 않을까. 좀머씨는 결국 죽음으로 걸어들어 갔다.
좀머 씨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덜 불쌍한 사람도 드물다. 죽음으로 끝이 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는 공허한 인생과 죽음에 쫓겨 소득 없이 헤매던 나는, 하나님을 만나 비로소 쉬게 되었다. 하나님 없이 인생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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