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영상교제 말씀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한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또 예수님께서 내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면 내 마음에 악을 품을 수가 없고 예수님을 내가 기억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두면서 내가 어둠속에 마음이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빛을 봤을 때 어둠이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자 바로 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간음한 여자를 예수님이 만난 곳은 정말 놀랍게도 성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나아오시니 백성들이 다 나아온지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난 곳이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루살렘 성전에 늘 등불이 켜져 있었지만 그 등불이 그들의 성전 내부를 밝게 비춰주긴 해도 그들의 마음을 비춰주진 못했기 때문에 마음은 여전히 어둠속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어둠 속에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제사장들이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것들을 보았고 또 거기서 가룟 유다를 고용해서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파는 그런 일들은 전부다 어둠에 속한 것인데 빛이 없는데서만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 일뿐 아니라 우리가 아는 대로 간음한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혔는데 그 간음이란 것도 역시 어둠속에서 가능한 것이지 밝은 빛 가운데서 간음을 행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도 역시 어둠속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려고 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이 어둠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둠속에 있기 때문에 간음한 여자의 죄를 알 수 있었지만 자기들의 죄를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제 그런 어둠에 속한 것들이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변해져 가고 있는 모양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이 여자가 정말 어둠 속에 있을 때 음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거기에 끌려 다녔습니다. 자기가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간음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둠에서는 그 음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물속에서 상어와 싸우면 금방 상어의 밥이 되겠지만 우리가 육지에 올라와서 상어와 싸운다면 그건 정말 아무 문제도 안 되고 금방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죄의 세력인 어둠 속에서 유혹과 싸울 때, 재앙과 싸울 때, 죄와 싸울 때, 우린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빛 앞에서 어둠과 싸우면 어둠이 맥을 못 추기 때문에 물러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 안에서 죄와 싸우고 악과 싸우고 어둠과 싸우면 그건 이기기가 너무너무 쉽지만 예수님을 떠난 상태 속에서 어둠과 싸운다면 곧 그건 어둠의 종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을 성경은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저도 제 마음에 빛 되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멀어졌거나 내가 빛 되신 예수님을 사모하지 않았거나 또 제가 구원을 받고 예수님 내 안에 계시지만 내 마음 안에서 예수님이 멀어졌고 내 생각에서 예수님이 어두워졌을 때 내 속에 오만가지 어두운 생각이 다 와서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어둡게 하고 괴롭히고 그런 것을 저는 자주자주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내가 추하고 더럽고 악한 인간인데 주의 십자가의 피가 내 죄를 사한 걸 깨닫고 주님의 그 십자가를 기억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만 가지 어둠의 생각들이 나를 다 떠나가 버리고 내가 진짜 밝아지고 기뻐지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자주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간음한 여자의 마음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 여자의 마음은 두려움, 절망, 공포, 음란,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난 뒤에 예수님이 그 여자를 보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고 돌려보낼 때 그 여자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주 밝고 기쁜 가운데, 감사한 가운데, 평안한 가운데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빛이 주는 것과 어둠이 주는 것들의 차이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간에 어둠에 속하면 어둠의 생각이 여러분을 지배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금방 죄에 빠지고 악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내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내 마음 안에서 예수님의 생각을 지울 수 없고 내 마음에 예수님이 채워지게 되지요.

간음한 여자가 간음하다가 돌에 맞아 죽기 위해 끌려가다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돌도 그 여자를 때릴 수 없고 어떤 저주도 그 여자에게 임할 수 없고 그 여자가 어떤 잘못을 범했지만 무죄로 예수님이 다 지켜주시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 속에 봉착되어 있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내 마음에 충만히 채워지면 그 예수님이 돌멩이 하나 날아오지 못하게 하고 그 여자를 죄에서 정죄하지 않고 구원하는 것처럼 모든 어둠에서 우릴 건져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은 때때로 환경이 어려울 때 여러분 마음이 어두울 때가 있지요? 여러분 때때로 고난을 당할 때 마음이 어두울 때가 있지요? 또 여러분들이 막 어떤 절망적일 때 마음이 어려울 때가 있지요? 그건 왜 어려우냐 하면 여러분들이 “아이 당신 같으면 이런 어려움 당하는데 절망 안 하겠느냐? 당신 같으면 이럴 때 짜증을 내지 않겠느냐? 화를 내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절망이 찾아오는 이유는, 슬픔이나 고통이 찾아오는 이유는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 앞에 설 때 이 여자를 때리려던 돌도 저주도 멸망도 다 물러가 버리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다고 그랬습니다. 예수와 그 여자 사이에 절망도 없었고, 고통도 없었고, 저주도 없었고, 멸망도 없고, 재앙도 없고 다만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 단 둘이만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여러분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아니하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섰을 그 당시, 그 시간, 그 때, 좌절이 물러가고 절망이 물러가고 재앙이 물러가고 악한 생각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때로 누가 미워서 고통당하는 사람 있습니까? 아니면 두려움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절망 통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가운데 다른 죄악으로 고통을 당합니까?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만일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예수님의 빛이 여러분 마음에 있는 모든 어둠과 저주를 내쫓을 것이고 예수님으로 여러분 마음이 채워져서 그때 참된 평안과 복이 임할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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