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영상교제 말씀
마음의 믿음을 따라


사도행전 16장 25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나갔는데 아시아에서 성령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해서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갔습니다. 거기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아서 무시아 앞에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를 썼는데 하나님의 영이 허락지 않아서 바울이 있는데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손짓하면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해서 하나님 뜻으로 알고 바울이 마게도냐에 갔고 마게도냐에 가서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점하는 귀신들린 여자를 만나서 귀신을 내쫓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점하는 귀신들린 여자가 귀신이 쫓겨나서 다시 점을 할 수 없으니까 그 주인이 바울을 고발해서 깊은 옥에서 매를 맞고 있는 그 장면, 그때 “밤중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내용을 여러분에게 읽어드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저는 굉장히 많은 일을 할 때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실하게 믿어졌을 때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형편이 잘 되어 갈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확실하지 않을 때 그게 참 애매한 것이거든요.

바울은 지금 굉장히 어려운 환경 속에 처해있습니다. 감옥에 가있고, 매를 많이 맞았고, 손발이 착고에 채워져 있고, 언제 감옥에서 나갈지 모르는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데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렇게 되었을 때 바울 속에 이건 자신이 빌립보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걸 계속 막으시고 갈라디아로 여러 곳을 다녀서 부르기아 다음에 무시아, 비두니아 하나님이 막아서 이제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간 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다는 것이죠.

아마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기절했을는지도 모르겠어요. 밤중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깨어난 뒤에 바울과 실라가 형편을 보고 실망하고 그 다음에 바울과 실라가 ‘이야 이거 밤낮 복음 전하면서 툭 하면 두드려 맞고 이 모양이냐?’ 절망 속에 빠져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절망 속에 빠질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죄수들이 들을 만큼 크게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는지도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 저희들 마음속에서 어느 편을 들여다봐도 항상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때 사단의 역사가 있고 사단의 역사가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사단의 역사가 없고 사단의 역사가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를 하실 때 꼭 사단이 역사를 하고 사단이 역사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쪽을 바라보거나 사단이 역사하는 그쪽 가운데 둘 중에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쪽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그 속에 살아서 일을 하게 되고 사단이 역사하는 그쪽을 바라보면 사단이 일을 하게 되는데 사단은 정말 많은 일을 해서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다가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적이지요. 법도 없이 그냥 무조건 두드려 맞고 매로 치고 온살이 찢겨지고 쇠고랑에 매여 있고 언제 나갈는지 전혀 막막하고 절망적인 가운데 있는데 거기서 사울의 눈에는 절망적인 것을 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띄어진 거죠.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기쁨의 영을 가진 사람들은 천 가지 만 가지 슬픔이 있어도 그게 안 보입니다. 기뻐하는 것만 보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좋은 옷도 안 보이고 좋은 신도 안 보이고 좋은 집도 안 보이고 먹을 음식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여러분 육에 속한 사람들은 육에 속한 걸 보지만 영에 속한 사람들은 천 가지 만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다른 게 안 보이고 하나님이 보인다는 거지요.

여러분 내가 매를 맞았고 사슬에 매여 있고 깊은 옥에 갇혀있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문제될 게 뭐가 있습니까?·아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절망하고 실망할 수 있는 이유는 형편 때문에가 아니라 그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이 안보이고 절망적인 사실 그것만 눈에 띄어서 그렇지 여러분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예수님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예수님이 도우시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오천 명이 왔을 때 주님이 거뜬히 먹이셨지요, 나사로가 죽었을 때 살리셨지요, 포도주가 모자랄 때 만드셨지요,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지요, 문둥병자를 고치셨지요, 그런 전능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가 문제되고 근심해야 될 일이 뭐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 우리가 절망하고 근심하는 이유는 그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고 절망스러운 형편이나 처지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문제지 그 하나님이 눈에 보이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바울은 자기를 얽어매고 있는 쇠사슬도 눈에 안 보였고 막 등이 찢어져서 상처나 나고 쑤시고 아픈 그것도 마음에 들어와 있지 아니하고 깊은 감옥 안에 있는 그 사실도 그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지요. 그러니까 바울의 눈에는 그게 안 보이는 겁니다. 아픔도 다 뭐 예수님이 보이니까. 내가 옥에 갇혔지만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면 하나도 어렵지 않으니까 주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는데 제 아내가 시집올 때 바느질 그릇을 가지고 왔어요. 예쁘게 알록달록 수를 놓아서 만든 건데 어쩌다가 제 옷에 단추가 떨어지면 제 아내가 바느질 그릇을 가져와서 열고 이제 실을 찾아서 제 단추를 달아주거든요. 거기는 흰 실도 있고, 검은 실도 있고, 이불 꿰매는 실도 있고, 재봉틀 실도 있고, 국방색 실도 있고 그런데 검은 실을 가지고 당기면 계속 검은 실만 풀리는 거예요. 흰 실을 쥐고 당기면 계속 흰 실만 풀리는 거예요. 떨어지면 또 흰 실 사다 놓지요.

우리 마음도 그와 똑같아요. 절망적인 것을 가지고 당기면 계속 끝나면 또 절망스러운 일이 생기고 끝나면 또 절망스러운 일이 생기고 낙심할 일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감사하고 찬송할 제목을 들고 잡아당기면 계속해서 감사할 조건이 계속 이어지는 거예요.

감옥에 있는 사도바울은 열 가지 백 가지 조건이 절망적이고, 감사할 조건이 하나님 함께 있다는 그 사실이 감사한데 아픈 것도, 감옥에 갇혀있는 것도, 매 맞은 것도, 쇠고랑에 채여있는 것도, 배고픈 것도 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주님 계신 그 주님이 눈에 보였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제 여러분 바울의 마음에 다른 절망적인 그게 들어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마음 안에 있으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을 하시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갑자기 옥터가 흔들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그래서 매인 것이 끊어지고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간수가 구원을 받고 변화되면서 바울이 감옥에서 나오는 그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나중에 보면 거기서 빌립보 교회가 생겼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어디가든 뒷받침 하는 교회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 그 당시 통신이나 교통수단이 좋지 못해서 바울을 찾지 못하다가 어느 날 빌립보 교회가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에바브로디도를 로마에 보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의 감옥에 가서 수고하는 그 바울을 위해 뒷받침 하다가 병이 들어서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써 가지고 그 편지가 끝나면 에바브로디도가 나아서 그 편지를 들고 빌립보 교회 가서 읽어준 그게 오늘 빌립보서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이렇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정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 상태 속에서 절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여러분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걱정스러운 곳에 눈을 향하면 계속 걱정스러운 것이 나타나고 실망스러운 것을 보면 계속 실망스러운 일이 나타나고 고통스러운 것을 보면 고통스러운 일이 나타나는데 우리를 도우실 하나님을 바라보시면 여러분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서 바울의 마음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될 때 옥터가 움직이고 모든 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찬송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찬송할 수 있는 형편으로 하나님이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전 세계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동안에 기후나 음식이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있고 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일이나 여러분이 복음을 전한 성도들이 마음이 자주 변하고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는데 그런 걸 보지 말고 여러분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럼 오늘도 주님이 여러분 속에 일을 해서 여러분 선교지에 놀라운 복음의 역사로 이어질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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