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영상 교제 말씀

감사의 열매를 키우시는 농부



마태복음 21장 33절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저는 이번에 광주집회 때 마태복음 뒷부분을 처음에 이야기 하고 나중에는 앞부분으로 다시 넘어 갔습니다. 마태복음의 뒷부분과 앞부분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말씀을 전했는데요. 마태복음 뒷부분에 보면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가운데,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탕감 받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십일시에 온 포도원의 품꾼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금방 읽은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간 이야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왕의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는 그런 이야기인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리고 ‘내 아버지는 농부’ 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참 농부라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는 저희들이 어릴 때, 우리 울안에 그땐 먹을 것이 없으니까 감나무도 심고, 무화과나무도 심고, 대추나무도 심고 그러셔서 제가 어릴 때는 늘 대추나무에 올라가서 대추 따 먹던 그런 기억들이 이제 납니다. 농부들이 과수원을 만들 때,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사과나무를 심고, 약을 치고, 비료를 주고, 전지를 하고, 물을 주고 하는 그 모든 것은 사과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모든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가을에 사과가 벌겋게 익은 것을 보면 농부가 얼마나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지요. 사실 과일이 익는 것을 보면 너무 탐스럽고 맛있는데, 하나님은 그러한 농부시라는 것입니다.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가 아니고, 배나 귤을 재배하는 농부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마음에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는 농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있는데, 일만 달란트라면, 한 달란트가 금이 약 40키로 그램쯤 되니까 일만 달란트는 40만 키로, 톤으로는 400톤의 무게가 되는 금인데 여러분, 그 금을 전부 탕감 받았을 때, 직감적으로 그 빚진 종은 ‘야, 참 살았다! 내 마누라 안 팔아도 되겠구나. 자식을 종으로 안 팔아도 되겠구나. 나도 안 팔려도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면서 그 다음에 ‘참 감사하다. 임금님이 나 같은 미천한 인간에게 이런 큰 은혜를 베푸시나.’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오도록 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포도원의 품꾼의 이야기도 천국은 마치 포도원에 품꾼으로 들여보내는 주인과 같은데 이 사람이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그다음에 삼시에 가서, 육시에, 구시에, 십일시에 가서 보니 여전히 놀고 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 여기서 노느냐?” “예,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상당하게 주리라.” 이 사람들은 품꾼으로 쓰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몸이 좋지 않았다든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였을 텐데, 그 십일시에 들어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너무너무 기쁘고 감사할 거라는 거지요. ‘야, 튼튼한 사람이 하루 종일 일해도 한 데나리온 겨우 받는데, 나는 잠시 일한대가로 한 데나리온 받았다.’ 성경에는 전부 그런 이야기인 거예요.

오늘 읽은 이 말씀도 어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를 만들고, 또 망대를 만들고 그리고 세를 주고 먼 나라에 갔습니다. 여러분 너무 재미있는 게 이 분은 먼 나라에 갈 계획을 가지고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거지요. 왜? 농부들을 위하여. 그 농부들이 포도원이 없으면 농지가 없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수입이 없으면 굶주려야 하고, 헐벗어야 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데, 포도원 주인이 멋진 포도원을 주어서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를 만들고, 망대를 짓고. 가만히 있어도 그냥 포도가 열리도록 해 놓았는데 그것을 따다가 그냥 누리면 되도록 해 놓았는데 야, 참 감사하겠다! 왕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 사람들도..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은 하나님은 농부신데, 사과 과수원의 농부도 아니고, 배 과수원의 농부도 아니고 감사의 열매를 키우시는 농부시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 속에 감사의 마음이 솟구쳐 나오도록 그런 일을 하나님은 늘 하고 계세요.

저는 정말 그런 하나님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오늘 제가 손녀를 보고, 참 감사했어요. 왜? 정말 저는 손자를 봤을 때 감사하고 손녀를 볼 때 감사했는데,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감사치 아니할 때도 하나님은 참 많은 일들을 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자가 돌에 맞아 죽으려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살아났을 때, 그 여자의 마음에 무엇이 맺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사가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하는 나무로 우리를 키우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계속 만들어 내시는 거예요. 우리가 욕망 속에 빠지고, 어리석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그 주인이 먼 나라에 갈 것 같으면 그렇게 안 할 건데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을 두르고,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세우고 정말 아무 논, 밭대기 하나 없이 가난하게 사는 농부들이 그 포도원에서 농사를 지어 포도원의 소산을 먹고 마실 때 얼마나 그들이 만족하고 감사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보면,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았는데 감사하지 아니하고, 포도원 농부도 감사치 아니하고, 왕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인간들이 감사하지 않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결론을 볼 때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지요. 그러나 성경에 보면 열 문둥이가 나음을 입었는데 한 문둥이가 나아와서 큰 소리로 감사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열매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농부십니다. 사과나무를 재배하는 농부도 아니고, 배나무를 재배하는 농부도 아니고, 다른 농부가 아니라 감사의 열매를 따기 위하여 나무들을 키우시는 농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키우시는 밭에 모든 나무들은 감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삶에 감사해 하고 기뻐할 많은 조건들을 주어서 우리가 감사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을 때 하나님은 그걸 보고 만족해하시고 기뻐해 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 저주를 받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감사의 맛을 보고 그 열매를 맺은 사람들은 하나님도 기뻐하고 자기도 기쁨에 젖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도 최근에 적으나마 감사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감사의 열매를 맺어서 우리 농부 되신 하나님에게 만족을 주고, ‘내가 참 잘했다’ 할 정도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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