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영상교제 말씀
이 시대의 노아


창세기 6장 11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여러분 노아 홍수 당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하고 멸망을 받은 많은 사람들하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러한 부분을 오늘 저녁에 좀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할 때 신앙생활을 자기 기준을 가지고 내가 착하게 살고, 열심히 기도하고, 율법을 지키고, 죄짓지 않고 그렇게 살면 다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얼만 전에 누가 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속에서 바리새인은 자기가 물론 죄를 짓고 악했지만 그래도 바리새인은 자기 나름대로 선한 부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나는 토색, 불의, 간음도 행치 아니하고 그 다음에 또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하고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 바리새인은 실제로 다른 사람들보다도 자기가 외형적으로 좀 선했고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부족해서, 신앙 생활이 잘 안 되어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입는 게 아니라 자기 잘한 걸 가지고 자기를 세워나가고 자기 하는 그 일에 치중되어 있었다고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는 그 일을 볼 때 다른 사람에 비해 특히 세리에 비해서 자기는 좀 깨끗하고 그리고 정말 신앙을 잘한다고 믿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특히나 이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세리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자기가 볼 때 죄인이었지만 남이 볼 때도 너무 더러운 죄인이라 자기 죄를 숨길 수 없어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을 보고 의롭다고 한 게 아니라 세리를 보고 의롭다고 한 거예요. 왜요?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고 세리는 아무 의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를 입으니까 세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되었고 바리새인은 자기 의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괜찮았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무익한 것이니까 바리새인은 의를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노아 당시에 사람이 패역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거지요. ‘나는 신앙 생활 잘 해. 좀 부족하긴 해도 난 그래도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어. 난 주일을 빠지지 않았어.’ 그런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믿음을 노아 홍수 당시에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보시고 탄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인간이 저렇게 죄를 짓지? 인간이 저러면 멸망을 받아야 하는데 너무 안타깝다.” 하나님은 탄식하시고 근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이 어땠습니까? 하나님이 탄식하고 근심하는 그 마음의 세계 속에 자기 마음이 안 가니까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한다고 하실 때 그들은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신다고 그랬어. 맞아. 우리가 너무 악을 행했네. 앞으로 좀 더 착하게 살면 되겠네.’ 그런 쪽으로 마음이 흘러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노아는 어떻게 했느냐 하면 정말 그 세리처럼 나는 선한 것이 없고 악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노아하고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의 차이가 뭐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밑바탕에 자기의 생각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물로 세상을 멸하신다고 하실 때 노아는 하나님 마음에서 내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했다면 노아 마음에도 ‘아 하나님이 심판하시겠구나.’ 심판이 왔는데 안타깝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심판을 정하시고
그 심판을 말씀하셨을 때 그 심판의 말을 들었을 때 심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질 않았기 때문에 심판하신다 그랬지만 ‘아이고 우리가 너무 악을 행해서 그래. 이제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받으실 거야.’ 그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지요.

저는 여러분 제가 신앙생활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에 강하게 부딪히는 게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이 처음에 아브라함하고 만나 대화를 하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백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아? 사라는 구십 세니.” 하나님과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모세를 보고 “내가 너를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게 하리라.” 하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아이고 나는 못합니다. 할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러니까 그 사람들 전부다가 하나님하고 다른 마음의 세계 속에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마음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노아는 처음에 방주를 만들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홍수를 내릴 거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 하나님이 홍수를 내리시겠구나. 방주를 만들어야겠구나.’ 노아 마음에는 그 마음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내가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겠다. 죄악이 관영했다.” 그래도 하나님이 보시는 그 죄악의 깊은 부분이 그들 마음에까지 안 오니까 ‘우리가 죄를 좀 지었어. 죄인이야.’ 그 정도로 생각을 하지 하나님이 탄식을 하시고 근심을 하시며 멸망하지 않을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이 안 되었으니까 자기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심판의 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이제 앞으로 잘 하면 될 거야.’ 그걸 믿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방주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자주자주 처음에는 몰랐는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구나. 하나님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왜 몰랐지? 하나님 마음이 이러셨구나.’ 그걸 깨달으면서 제 마음이 자라고 믿음이 더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단기 선교사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 해도 생각을 조금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그냥 ‘아, 우리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하구나.’ 그렇게 하지 말고 정말 거짓되고 부패함을 보고 탄식하는 그 하나님의 마음, 그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속에서 발견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 시대의 노아가 되어서 다른 사람은 어떠하든지 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 것이고 거기에 들어가서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도 노아 홍수 때와 똑같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홍수를 내린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처럼 이 시대 사람들도 그렇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냥 말씀을 받지 말고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하나님이 느끼는 그 죄에 대한 진짜 미워하는 그 마음, 하나님이 느끼시는 우리를 심판하는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하나님이 느끼시는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우리 마음에 전달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힘있게 살아 역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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