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영상교제 말씀
영을 좇는 자는


로마서 8장 5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게 없지만 로마서 8장 5절을 생각할 때 내 마음에 ‘이야 진짜 그렇다!’ 제가 구원받고 난 뒤에 복음을 전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사람들이 지혜가 있고 없고, 잘 배우고 못 배우고, 똑똑하고 못나고 그거 전혀 상관없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육신적인 생각을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 있고 또 육신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생각을 따라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니라 나 자신도 보면 내가 어떤 문제가 딱 닥쳤을 때에 내가 그 문제를 위해서 육신적인 방법으로 ‘아 이래서 맞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이러이러하면 되겠다.’ 보통 그쪽으로 생각이 처음에는 막 들어와요. 그러다가 또 다시 생각을 해보면 ‘아, 아니지.’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 마음이 오는 거예요.

제가 처음에 대전에 갔을 때 대전교회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
가 산 땅을 등기 이전을 하는 일인데 거기가 투기 지역이 되어서 등기 이전을 할 때 관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굉장히 어려웠어요. 땅은 다 사고 돈도 다 내어놓았는데 우리가 땅을 넘겨받을 수 없으니까.

내가 어느 날 내 마음속에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서울에 있을 때 내가 잘 아는 형제님이 한분 계셨는데 그분은 충청도 사람이고 대전 도청이나 시청에 자기 제자들이 많아서 그분이 잘 해결해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분에게 전화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전화번호를 찾아가지고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누르려고 하는데 내 마음 속에서 성경말씀이 하나 딱 떠오르는데 “방백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좋다.” 그 말씀이 딱 떠오르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건 막연해 보이고 그분을 의지하면 꼭 될 것 같고. 그런데 내가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안 떠올랐으면 몰라도 그게 떠오르는데 그 말씀을 두고 내가 그분에게 전화를 건다면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도저히 전화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전화를 놓았어요.

그러고 났는데 일이 잘 안 풀리는 거예요. 우리 한밭 교회 형제 자매들도 나를 보고 ‘일을 좀 잘 못한다.’ 그런 식으로 보는데 어느 날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내가 그분을 의지해서 일이 잘 될 건데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이 안 된다면 어떻게 어려울까? 그래. 만일에 내가 등기를 못 받아서 땅을 빼앗기고 형제 자매들은 나를 보고 병신, 바보라고 그러고... 그래 그럴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방백을 의지하지 않겠다.’ 결단이 거기까지 미쳤어요. ‘그래 땅 빼앗기면 뺏기고 바보가 되면 되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겠다.’ 마음에 그 선이 딱 정해졌을 때 그때 내 마음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래, 내 마음이 분명히 인간적인 방법을 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을 좇는다는 마음이 딱 들면서 그 다음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 일이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해결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 선교사 한분이 출국했다가 돌아왔는데 간증을 들어보니까 누가 풀어주면 500불이면 된다고 해서 500불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내 마음에 ‘아이고 이 어리석은 사람아, 500불을 줘서 그걸 풀려고 할 때 그냥 500불 줘서 푸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할 걸 빼앗아 와서 그걸로 주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을 할 수 없는데 그게 일이 되겠냐?’ 그런데 그때 그분은 그러면 꼭 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지요. 그러면 곧 풀릴 것 같고 인간이 보는 눈은 항상 그래요. 그래서 육으로 흘러가고 따라간다는 거지요.

그래 우리가 신령하다는 건 뭐 특별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 결정하면 그게 육신을 좇는 거고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면 그게 영을 좇는 거예요. 뭐 다른 게 아니고. ‘난 믿음이 없어. 난 신령치 않아.’ 신령한 사람의 눈에 볼 때 하나님이 살아있고 하나님이 하실 것 같고 믿음이 없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사람을 의지하는 게 잘 될 것 같고, 그게 육에 속한 사람이고 그게 영에 속한 사람과의 차이인 거예요.

성경은 말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지금 볼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막연한 것 같고 인간적으로 사람을 의지하면 꼭 될 것 같이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람을 많이 의지하는데 나는 지난 삶을 통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러면 될 것 같아서 했는데 잘 된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적이 방법이 안 되어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또 안 된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게 내 마음에 딱 선이 지워지니까 그 다음에 또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인간적인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아 내가 이러면 실패인데 이렇게 할 때마다 다 망했는데, 실패했는데...’ 그 마음이 딱 떠오르니까 그렇게 할 수 없으면서 자연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 노후 문제나 내 가정 문제나 교회 문제나 어느 것 하나를 불문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게 없다는 사실을 내가 느꼈거든요.

내가 대구에 있을 때 우리가 참 가난하고 어려웠는데 혼자 사는 자매님 한분이 있었어요. 늘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달걀 한판을 봉지에 싸가지고 오시는데 그게 그때 우리에게 너무 귀한 선물이었어요. 세월이 지난 뒤에 그때 그 자매님이 너무 고마워서 그 자매님께 뭘 좀 감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나는 뭘 남 주는 게 좀 어색해서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식사를 한 끼 대접해 드릴까?, 좋은 한복을 한 벌 해 드릴까? 가벼운 구두를 하나 사 드릴까? 핸드백을 하나 사 드릴까?’ 그러다가 결론을 못 내리고 “주님 그 자매님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내가 뭘 하나 하려고 하니까 그런데 주님이 좀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자매님 혼자 사는데 죽을 때까지 건강한 몸으로 살다가 죽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그 뒤에 세월이 한 20여년 지나면서 종종 그 자매님 만나서 보면 너무 건강한 거예요. 이번 수양회 때도 금요일 아침에 앞자리로 갔는데 바로 제 옆에 그 자매님이 계셔서 “아이구 자매님 건강하세요?” “예 목사님 건강해요.” 그걸 보면서 내 노후를 주를 의지하지, 육신의 생각을 좇을 수가 없는 거예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주를 의지할 때, 그리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걸 대충 듣지 말고 정확히 알면 육으로 흘러갈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대충 듣고 넘어가서 그래요. 정말 성경말씀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방법이 잘 될 것 같고 영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방법보다 하나님의 방법이 잘 될 것 같고 그 차인데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쪽이 잘 될 것 같습니까? 이 시간 여러분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내 인간의 방법에 기대를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대를 두고 있습니까? 로마서 8장 뒷부분에 보면 그게 딱 정해지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일을 한다는 걸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사람으로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힘 있게 일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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