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영상교제 말씀
형편보다 더 크신 하나님


사도행전 4장 19, 20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세상에는 늘 전쟁이 있지요. 우리가 매일매일 그냥 사는 것 같아도 우리 몸 안에 많은 병균들이 들어오고 또 우리가 싸워서 병균을 이기고 그래서 삶이 존재하는 거지, 우리가 병균을 이기지 못하고 지면 거기 매이고 고통을 겪는 것인데, 신앙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베드로가 전에 예수님과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은혜를 입고 그랬지만 베드로가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부인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가 하면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한 그 말을 들었을 때에 그 말이 이제 자기가 예수와 하나란 사실을 알면 잡힐 것 같고 잡히면 고난을 당할 것 같고 그런 두려움이 베드로의 마음에 엄습해 왔다는 거지요.

문제는 우리에게 오는 위기나 어려움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를 돕는 주님이 계시는데 이제 베드로는 그 주님이 계셔서 자기를 지키고 도우시는 그것보다도 자기가 예수님을 안다고 했을 때 닥칠 위기가 더 클 걸 알기 때문에 그게 두려워서 이제 말을 못했다는 거지요.

동일한 베드로인데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4장에서 보면 제사장들 이런 사람들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희가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증거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은 얼마든지 베드로를 옥에 가둘 수가 있고, 돌로 칠 수도 있고, 처형을 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인데 베드로가 그것보다도 자기 안에 있는 예수님이 훨씬 더 크시기 때문에 그게 두려운 것보다 주님이 두렵기 때문에 베드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담대하게 그는 이야기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 두려움이 왔을 때 베드로는 그것보다 주님이 더 두려우니까요.

우리가 전에 야외 집회 같을 때 그 이야기를 했지요. 애굽에 있는 산파가 바로 왕이 그 산파에게 이야기하기를 ‘유대 히브리인이 아들을 낳으면 하수에 던져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산파는 바로왕의 명령보다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기를 죽일 수가 없었다는 거지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세상에 닥치는 형편이 더 여러분에게 가까우냐? 주님이 더 가까우냐? 그게 모든 걸 결정하게 되어진다는 거지요. 만일에 여러분 우리가 어떤 어려운 형편이나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보다도 세상이 더 크게 보이고 더 가까워졌을 때 주님이 두려운 것보다 세상이 두렵고 어려우니까 이제 세상의 말씀을 따라 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가 사도행전에 있는 이 베드로를 보면서 너무 놀라운 것은 여러분 처음에 그는 계집종 앞에서 벌벌 떨었는데 베드로가 이제 정말 대제사장과 장로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해 봐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며 증거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어떡할 줄을 모르더라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시련이나 어려움이나 핍박이나 위협을 당케 되는데 문제는 내가 당하는 그 위협보다도 주님이 더 크면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님이 다 알고 주님이 일하고 계시는데.
그런데 우리가 논리적으로 주님이 더 크고 능력이 많은 걸 알지만 내 마음이 세상에 가깝고 주님과 멀어지면 세상에서 닥치는 위협은 느껴지지만 주님이 나를 구해줄 것 같은 그런 마음은 멀어서 안 느껴지니까 두려워서 숨어버리고 피해버리고 그러지만 사랑하는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인 것을 믿고 그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뭐가 두려움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할 일이 없는 거지요.

저는 이번에 대구에 집회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몸이 불편한 분들을 봤습니다. 암이 걸려서 고생하는 분들, 그 다음에 정신이 좋지 않는 분들,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떤 어른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목사님 이 아들이 목사님 기도를 받고 정신이 많이 맑아졌습니다. 한번만 더 기도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애원을 하는 거예요.
어떤 분은 청바지를 입고 머리에 모자를 썼는데 난 여학생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학생은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까 위암 수술을 받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아이구 학생이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았냐?” 그래서 제가 구원받았냐고 하니까 구원은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기도를 해주고 복음을 들으라고 좀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문 목사님을 통해 들으니까 그분이 부인인데 위암 수술을 받고 막 그렇게 어려워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복음을 전하고 우리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뭐냐하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또 우리 기도를 주님이 들으시고 함께하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하고 또 그분들이 기도를 받으러 오는 거지요. 또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분명히 볼 수가 있는 거지요. 이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주님은 막연해 보이고 반대로 형편은 커 보이고 곧 부딪힐 것 같고 믿음 있는 사람은 형편이 막연해 보이고 주님이 살아 내속에 일하는 걸 분명히 느끼게 되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복음을 위하여 이런저런 문제가 닥치지만 여러분이 느끼거나 여러분이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주님이 모든 것보다 크시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떤 누구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여러분 마음에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사람이,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전에는 겁이 나서 벌벌 떨었는데 담대히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생각해봐라. 우리는 보고 들은 걸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담대히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전혀 두려워해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모든 일을 이루고 계시고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생각에서 그렇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일이 우리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당하시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그 일을 아름답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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