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영상교제 말씀
내 생각에서 예수님의 생각으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미국 LA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LA 집회하는 가운데 많은 은혜를 입었고 또 리오몬따냐 찬송도 우리에게 참 많은 은혜를 끼쳤습니다.

성경말씀 마가복음 2장 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우리가 마가복음 2장,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 너무 감사한 게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가 들어올 수 없어 지붕을 뚫고 내리는 걸 보고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서기관들이 뭐라고 생각했느냐 하면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며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하시면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소자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게 대수로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사랑하는 주님께서 말씀하는 이 말씀 속에서 두 가지 강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그 서기관들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서기관들이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할 수가 있느냐?’ 그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을 때에 서기관이 듣는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런 이야기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는 그 말도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지요. 중풍병자가 생각할 때 ‘어떻게 내가 상을 들고 걸어가? 난 병자인데. 말이 안 돼. 난 그럴 수가 없어.’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이 마가복음 2장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전혀 상관없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거부하고 판단하고 대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지요.

이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 같은지 몰라도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둘로 나눈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서기관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중풍병자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둘로 나눈 거죠. 중풍병자가 예수님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을 때 그게 자기가 가능해서 자기 마음에 ‘아 그러면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겠구나’ 그래서 걸어간 건 아닙니다. 마치 그 서기관들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서기관들이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며 서기관들이 생각을 가졌듯이 중풍병자도 똑같이 ‘어떻게 내가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가 있어? 나는 안 돼. 나는 부족해. 나는 병신이야.’ 그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기관은 그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생각 그대로를 가지고 나갔고 중풍병자는 그 말씀이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자기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다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나타나셔서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이 웃었어요.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이건 원래 아브라함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생각으로는 자기나 자기 아내가 자식을 낳는 게 불가능하다는 그 생각이 바뀌어져서 ‘아 그러면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구나.’ 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사라도 동일한 것입니다. “사라가 어디 있느냐?” “장막에 있나이다.” “기한이 이르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웃었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사라가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악한 자가 있다면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는 자가 악한 자가 아니라 자기 주장만 가지고 남의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사람이 진짜 악한 사람입니다. 우린 모두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것도 있고 여러분의 주관도 있고 경험도 있고 지식도 있고 방법이 있는데 일단 내가 그런 느낌이나 그런 방법을 가졌다손 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내 방법을 내려놓고 내 생각을 바꾸어서 주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바꾸는 그 사람은 분명히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사람인데, 분명히 내가 볼 때 하나님 말고는 죄를 사할 수 있는 자가 없는데, 분명히 내가 볼 땐 나는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다는 게 너무 분명한데 여러분 복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통된 게 뭐냐 하면 자기의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여러분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은 내 상태 속에서 내가 예수님 같이 산다는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예수님과 같이 생각을 바꾸어서 주님과 같이 사는 건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내 생각을 바꾸지 아니하고 그냥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니까 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다른데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하니까 고통스럽고 어렵고 잘 안된다는 거지요.

서기관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기 주장을 내세웠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나 반대로 이 중풍병자는 자기 생각에는 분명히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는 사람인데도 자기는 분명히 알지만 그 생각을 바꾸어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쳐 가야 할 과정이라는 거지요.

성경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하라는 말은 내 마음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서 예수님의 생각으로. 그리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주신 주님의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저는 한국에서 뿐 아니라 지금 LA에 와 있습니다만 다음 주간에 내일부터 저희들이 페루 리마로 가게 되는데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복음을 믿으라.”

사람들이 믿으려고 해도 되어지지 않는다는 거지요. 왜? 자기 생각을 그냥 둔 상태 속에서 믿으려고 하니까 자기 마음하고 다른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자기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믿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고 힘들지 않고 주님과 같은 삶을 살고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지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능력이 함께 있는데 서기관들이 그 말씀을 버렸다는 건 예수님을 버리고 능력을 버린 걸 말합니다. 중풍병자가 그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건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능력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중풍병자에게 그 말씀을 받아들인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병이 나음을 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귀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마가복음 2장에서 서기관들과 중풍병자 이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오늘도 이 세상에는 서기관처럼 자기 주장을 내펴고 자기 주장으로 예수님을 거스리고 판단하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풍병자처럼 자기 생각을 꺾어버리고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하고 우리 주님의 생각은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내 생각을 그냥 두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내 생각을 버리고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일하시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며 이 시대의 작은 예수가 되어 밝은 빛을 비추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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