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영상교제 말씀
어디에 기대를 두느냐?


열왕기하 3장 10절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뒤에 내 삶 속에 다른 한 마음이 와서 나를 이끌고 있는 게 너무 감사하거든요. 내가 그냥 달라지려고 했거나 변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었는데 분명히 이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닌데 내 마음하고 비슷하다면 내 마음인줄 알겠는데 내가 가진 마음하고 너무 다른 마음의 세계를 주님이 주셔서 내가 그 마음에 이끌림을 받았던 경험들이 참 많이 있거든요.

옛날에는 내가 그런 마음이 없이 그냥 사탄이 주는 욕망이나 정욕을 따라 한없이 끌려갔었는데 구원을 받고 난 뒤에 달라진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주님이 오셔서 아주 결정적인 시기에 중요한 일에 내 마음을 끌어서 지금까지 내가 갖지 못했던 주의 마음으로 가도록 그렇게 나를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선교를 하는 것이나 방송을 시작할 때나 책을 출판할 때, 대덕 수양관을 지을 때, 대구 교회 예배당을 살 때, 대표적으로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도저히 그게 싫고 내 마음에는 부담스럽고 어렵고 그랬는데 내 마음 속에 다른 하나의 마음이 나를 그쪽으로 강하게 끌어가 주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나는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어떤 각오를 하지 않아도 내가 결정을 하지 않아도 주님이 내 마음속에 내 마음을 이기시고 나를 끌어주시기 때문에 육체만을 위해 가던 내가 육체가 싫어하지만, 육체가 불편해 하지만 주의 뜻을 따라 행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는 잘 아는 이야긴데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엠돔 왕이 모압을 치러 들어갔는데 가다가 물이 없어가지고 7일만에 생축이 먹을 물이 없기 때문에 절망 속에 빠졌어요. 이스라엘 왕이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너무너무 재미있는 것은 사단은 우릿 속에 절망스러운 생각을 자꾸 넣어요.

사르밧 과부에게 선지자 엘리야가 말하기를 "가서 물을 한 그릇 다오." 물을 뜨러가니까 "이젠 물만 말고 작은 떡 하나를 내게 가져와라." 과부가 뭐라고 말합니까?
"당신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그때 엘리야갸 말하는데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과부의 마음을 이끌면 믿을 수 없는 것도 믿게 되는 거예요. 반대로 사단이 우리 마음을 끌면 분명히 믿을 수 있는 건데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다는 거지요.

똑같은 상황 속에 있는데 유다 왕하고 에돔 왕하고 이스라엘 왕, 세 왕이 모압을 치러가다가 이제 물이 없어서 전부 목말라 어쩔줄 몰라하는데 똑같은 형편인데 이스라엘 왕은 절망 속에 빠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모압의 손에 붙여서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슬퍼하고 절망스러운 이야기를 하는데 반대로 유다왕 여호사밧은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유다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나를 돕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겠다. 똑같은 형편에서. 그게 믿음의 사람과 예수님이 없는 사람의 차이라는 거지요.

여러분 안에 주님이 계시면 그 주님이 여러분 속에 먼저 마음을 일으키는 일을 합니다. 이상하게 주님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주장하실 때 주님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시게 되면 바로 주의 마음이 내 마음을 장악하시지요. 그땐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차는 것입니다. 그럼 주의 마음 속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 주님이 원하시는 일들, 그 일들을 우리가 주의 마음으로 부딪히게 된다는 거지요. 놀랍지요.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헤롯 왕보고 헤로디아를 버리라고 말했을 때 세례요한의 마음을 가지고 가면 쉽게 헤로디아을 버릴 수 있지만 헤롯 자신의 마음으로는 못 버리지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뜻에 굴복케 하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주의 마음이 내 안에 와서 나를 이기고 끌어가 줄 때 나는 정말 주님을 순종할 수 있는 사림이 되는 거예요. 주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서 나를 소망으로 이끌어 가실 때, 주의 마음이 내 마음 속에 와서 믿음으로 나를 이끌어 가실 때, 그때 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주의 마음이 아니고 사단의 마음이 나를 이끌고 그에 이끌림을 받으면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우리는 아무 힘이 없어요. 우리의 각오나 결심이나 그런게 아무 힘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소망을 갖는 것은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를 끌어가 주실 때, 주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실 때, 주님이 내게 역사하실 때, 주님이 나를 도우실 때, 그때만이 내가 하나님 일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도 잘 하려고 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충성하려고 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내 어떤 노력으로나 내 수고나 그걸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진짜 어리석고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나는 부족합니다. 주님이 나를 이끌어 주시면, 주님이 나를 도우시면 주님으로 내가 죄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시련을 이기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여러분 마음에 오셔서 여러분 마음을 끌어주실 때, 주의 이끌림을 받을 때, 여러분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 왕은 절망 속에서 울부짖었고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향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달려갔다는 거지요.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이 절망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틀림없이 여러분이 주님의 마음이 아닌 여러분의 생각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믿음이 없습니까? 소망이 없고 어렵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가지고 보아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보시면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일이든지 소망으로 이기고 힘을 주고 능력으로 힘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뛰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마음에다 기대를 두느냐, 내 자신에다 기대를 두느냐? 그것으로 믿음의 삶을 사느냐, 못 사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을 말씀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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