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영상교제 말씀
하나님의 뜻에 기대를 두고


사무엘하 2장 8절 ~ 9절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느 날 사무엘을 보내어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다윗을 왕을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다윗을 왕을 삼았지만 실제로는 사울이 왕의 자리에 있고 누가 봐도 다윗은 왕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사울이 왕 자리에 앉아 있지만 사울이 왕이 아니고 다윗이 왕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 보기에는 저 분이 왕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른 사람이 왕일 수가 있고 인간 보기에는 이 일이 잘될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그게 망한 일일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지요.

결국은 우리가 아는 대로 사울은 멸망을 받았습니다. 비참하게 죽었고 중요한 건 사울이 죽을 때 사울만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아들 요나단이나 말기수아나 그 아들도 함께 죽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에는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충성된 군대장관이 되어서 사울 곁에서 사울이 죽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다가 사울이 죽을 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사울은 죽었는데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죽지 않고 이제 사울이 죽었기 때문에 다윗의 나라가 서야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가서 왕을 삼아서 다 망한 사울의 집에다 기대를 두고 이제 여기 길르앗이나 아술이나 이스르엘이나 그 다음에 에브라임이나 베냐민 이 지파 사람들이 또다시 패망했는데 그 패망한 사울을 섬기면서 따라가고 있더라는 거지요.

자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귀한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범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실 때 사울이 왕이 아니라 다윗이 왕이었습니다. 사울을 따르던 요나단은 사울과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압살롬의 경우에도 하나님이 보실 때 다윗이 왕인데 압살롬이 왕이 될 것처럼 보여서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서 압살롬에게 기대를 가지고 압살롬을 따르다가 결국 아히도벨이 죽는 모양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도니야가 왕이 된다고 했을 때 그때 요압은 정말 다윗을 섬기다가 아도니야 편에 섰다가 요압이 비참하게 죽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와 있는 거지요.

여러분 참 저도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이 인정하지 아니하는, 내 보기에 기대할 만한 것, 내 보기에 마음 둘만한 것, 거기에다 참 많은 마음을 쏟았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는 이제 사울의 집은 다 망했는데 2장에 보면 전쟁이 나오는데 2장 12절에서 전쟁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쟁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30절에 “요압이 아브넬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무리를 다 모으니 다윗의 신복 중에 십 구인과 아사헬이 궐이 났으나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삼백 륙십명을 죽였더라.”

그래 이 전쟁에서 다윗에게 속한 사람이 20명이 죽었는데 사울에게 속한 사람은 360명이 죽더라는 거지요. 똑같은 이스라엘의 군인들인데. 이들은 정말 하나님이 버린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질 못한 거지요. 하나님이 버린 사람인데 거기에 기대를 두고 거기에 마음을 두고 잘 될 것 같아서 거기에 따라가면 다 망해버린다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가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요나단이 다윗의 아주 가까운 친구인데 자기 아버지라는 관계 때문에 다윗 편에 서있지 않고 사울 편에 서 있다가 사울이 망할 때 같이 망해버리더라는 거지요. 같이 망하니까 그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였는데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 다윗은 망할 것 같고 압살롬이 성공할 것처럼 보이니까 이제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 편에 서 있다가 결국 그는 죽임을 당하더라는 거지요. 요압도 다윗 편에 있어야 하는데 아도니야가 왕이 될 것처럼 보이니까 아도니야에게 기대를 두고 요압이 아도니야 편에 섰다가 그가 결국 죽임을 당하더라는 거지요. 똑같은 이야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데도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 괜찮아 보이고 내가 볼 때 정말 잘 될 것 같고 아름다울 것 같은 그런 것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아브넬도 그랬고 그 다음에 또 요압도 그랬고 요나단도 그랬고 아히도벨도 그랬고 다 그랬다는 거지요. 그런 사람들이 진짜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참 똑똑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인간적인 면으로 판단을 해서 했지 하나님의 차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돕는 게 어디인지 거기에 기대를 두지 않았다는 거지요.

제가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신앙 생활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세우지 않는데, 거기에 기대를 두고 거기에 투자하고 거기에 마음을 쏟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거지요. 어떤 일들은 정말 잘될 것처럼 보이고 아름답게 되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실제로 일을 해 들어가 보면 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서 얼마나 의기양양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서 정말 모든 것이 잘될 것 같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결국 롯은 다 망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걸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볼 때 좋고 나쁜 내 어떤 판단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것이냐? 그것을 결정해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이이요, 참된 믿음의 사람이라는 거지요.

다윗이 왕이 된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알고 사울이 망했는데도 여기 보면 길르앗, 길르앗 야벳은 암몬 사람에게서 사울을 건져서 거기에 관대하였고 아술이나 이스르엘이나 에브라임이나 베냐민이나 이런 사람들이 다윗만 섬기지 아니하고 망해가는 하나님이 버리신 이스보셋을 섬기고 있는 이런 안타까운 모양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디에 기대를 두고 있습니까? 내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내보기에 훌륭한 것, 내보기에 잘 된 것, 거기 기대를 두지 말고 하나님께 기대와 소망을 둬야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면 세워질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되어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으로 것이 아니지만 인간적인 면으로 좋아 보일 때 그걸 따라가다가 아히도벨이나 요압이나 요나단처럼 죽임을 당하는 그런 비참한 일들이 많은 거예요.

이제부터는 우리가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 다 부인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곳에 우리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복을 입을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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