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한 평가(난 크리스챤이 아님)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초창기에는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것들의 계시적인 요소와 이성적인 요소를 기독교 윤리학
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유대교인들은 행위게율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계율은 오늘날 관습으로 여기는 것으로서, 엄격하게 말해서 윤리적이라기
보다는 부족의 율례나 정결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계율에는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나 다양한 식사규칙과
금지조항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규율은 좀더 직접적으로 윤리적인 것인데,
십계명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신은 항상 그의 백성들에게
도덕적으로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행위할 것을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실제 이방민족들에 대해서 유대교의 신은 오늘날 인종차별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잔혹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마침내 기독교 시대에 들어오면서
보다 계몽적이고 보편성을 띤 윤리에 눈뜨게 됨으로써 사랑의 계명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유대교는 단지 기독교
사상의 빛 바랜 원천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일생을 독신으로 사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변명을 해야 하거나 발뺌을 해야 할 일입니다.
항상 전쟁 상황에 처해 있고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족을 갖는다는
것은 적극적인 의무인 것입니다. 예수는 유대교를 받아들여 적응했을 뿐 아니라
(흔히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ㅎ) 그것을 넘어섰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자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Matthew 5:17)

그는 유대교 율법하에서 성장하였으며 유대교는 그의 사유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준수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냉정할 만큼
무관심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안식일의 금지규정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예수의 언행을 문맥과 떼어놓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하겠지만...)
자신이나 제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가족과의 연대나 의무에 대해서도 가혹할
만큼 냉정하였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예수는 유대교 율법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복수를 규정한 조항들(눈에는 눈, 이에는 이)을 넘어서기를 원했으며
(특히 산상수훈에서 표현되었듯이)여태까지 인정되어 오던 한계를 넘어서까지
도덕적 태도를 확장하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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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서는 단순히 참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증오를 사랑으로 갚아야 합니다.
궁핍한 사람들에게는 자선을 하는데서 멈추지 말고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까지 계속 주어야 합니다.
가른 사람의 아내를 건드리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들에 대한 욕정을 마음속에서 내몰아야만 합니다.
우리 편에 속하는 사람만을 도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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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Mark 10:17)
라고 묻자 예수는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Mark 10:21)
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들 예수의 가르침은 참으로 극단적인 실례로서, 학자들이 지적하는듯이
예수가 생각하고 살고, 이야기한 그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메시아와 도래할 하나님의 심판을 고대하던 묵시의 시대로서,
예수 자신은 바로 그같은 문맥에서 활동했던 것입니다. 그의 인간적 본성(그의
신적 본성에 상반된)은 신의 계획에 대한 이해의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 예수 자신은 종말이 그의 생존시에나 적어도 그의 추종자들이
생존할 때 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제한된 시간을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깨닫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될 청중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는 유대교의
율법이나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문헌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철학적 체계에
버금가는 윤리체계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혼에 대한 가르침이나,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돌리라고 한 제잘들에
대한 가르침(이 말로 그는 반란의 음모를 벗어났죠)과 같이 실제와 연관된
금언들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수의 설교에서는 과거 사회는 물론 현대 사회의 토개다 될
수 있는 명료한 도덕체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늘날과 같이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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