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영상교제 말씀
두렵지만 장사를 시도할 때


마태복음 25장 25절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종들을 불러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달란트를 주었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곧 가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남겨가지고 주인 앞에 나왔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겨가지고 주인 앞에 나왔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다가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이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말하기를 그가 쓴 단어 가운데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었느냐 하면 다른 일은 다 괜찮은데 복음을 증거하려고 할때는 꼭 이렇게 사탄이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주저하는 조바심이나 그런 부담을 넣더라고요. 제가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제가 설교를 하는 것도 처음에는 두렵고 부담스러웠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역시 그랬고 대전도 집회하는 것도 너무 내게는 부담스러운 것이었고 방송 설교를 하는 것이나 책을 출판하는 것이나 선교학교를 시작하는 것이나 해외 선교를 하는 것이나 교도소 전도나, 이상한 것은 하나님 일은 어떤 일을 하려고 시작하면 마음에 막 부담스러운 마음이 일어나고 사탄이 늘 우리에게 부담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참 감사한 사실 가운데 한가지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일어나는 건 틀림없지만 사탄이 내게 부담을 주면 주님은 반대로 내게 소망과 믿음을 넣어주는 일을 하더라는 거지요. 그래서 이 부담하고 주님이 주시는 소망 속에서 내가 소망과 믿음 가운데 기울여져서 일을 시작했을 때, 그때는 내가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주님이 그 모든 문제를 너무 은혜롭게 처리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걸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여기 다섯 달란트 받은 자도 틀림없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틀림없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담스러운 사탄이 주는 음성만 들은 게 아니고 주님께서 주시는 그 말씀, ‘주인이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을 때는 가지고 놀라고 주시지 않았을 거다. 장사하라고 주셨으니까 장사를 하면 주님이 도우실 거다.’ 이런 마음으로 장사를 했는데 너무 놀랍게 장사가 잘 되어서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왔단 말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참 부담스러웠는데 다섯 달라트 받은 자가 장사하는 걸 보면서 자기도 장사를 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서 또 두 달란트를 남겨서 주인의 마음에 큰 기쁨을 얻고 자기 마음에도 만족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틀림없는 사실 가운데 한 가지는 한 달란트 받은 이 사람 마음에도 부담이 있었던 건 틀림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권고하는 마음도 역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부담을 주면 그 부담에만 젖지, 하나님이 주시는 그 권고하는 말씀이 마음에 젖지 않기 때문에 그냥 피해버리고 ‘아이 힘들어, 부담스러워.’ 하면서 장사를 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장사를 해본 사람은 처음에는 부담스럽지만 장사를 하다가 하나님이 돕는 걸 경험하고 그 다음에 이문이 남고 그러니까 기쁨 가운데 젖어있는데 이 사람은 주인이 떠난 그날부터 돌아오는 그날까지 “두려워하여” 하는 단어가 그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 주인이 떠난 뒤에도 한 달란트를 가지고 두려워서 장사를 하지 못했는데 그 두려움이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그 마음을 잡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있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면 절대 그 단어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게 신앙을 너무너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동안에 사탄은 항상 우리의 마음에 부담을 주기 마련입니다. ‘아이구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안 받으면 어떡하지? 안되면 어떡하지? 어려움 당하면 어떡하지?’ 그런 마음을 사탄이 계속 우리 마음에 일으켜서 부담스럽고 두렵고 어렵게 만들어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한 가지는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는데 그 성령은 여러분에게 용기와 힘을 주면서 ‘너는 그걸 할 수가 있어.’ 그렇게 인도한다는 거지요.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시킬때 왜 훈련을 시킵니까? 독수리가 아니기 때문에 독수리를 만들기 위해서 훈련시키는 건 아닙니다. 독수리로 태어났지만 독수리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고 했을 때 그 그리스도는 조금 부족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 자신을 보는 눈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눈으로 장사를 할 때 처음에는 주저되고 두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역사하는 걸 보고 기쁨을 누리게 되고 감사하면서 그 두려움이 떠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삶을 살게 될거라는 거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이번에 마산 집회를 하면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그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성경은 아브라함이 잘한 것만 기록하지 았았습니다. 애굽에 내려갈 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이나, 그 다음에 계집종을 취해서 아들을 얻은 것이나, 그리고 아들을 주신다고 했을 때 믿음이 없어서 웃은 것이나...

그러나 그런 아브라함을 계속 이끌어서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이끄는 그 하나님을 보면서 제가 너무 감사하고 소망이 넘쳤습니다. ‘아 하나님이 저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을 만드신 것처럼 이렇게 형편없는 나를 오늘 이 목사로, 복음 전도자로 만드시려고 하나님 이렇게 일을 하셨구나.’ 그걸 생각할 때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 속에 역사하는 주님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 주님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었느냐 하면 내가 두렵지만 내 속에 인도하는 주의 음성을 들으며 주의 이끌림을 받아서 장사를 시도할 때, 복음을 시도할 때, 그 때 도우시는 주님을 보면서 주님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독수리 어미가 부지런히 새를 훈련시키는 것은 독수리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일에 어미가 그렇게 훈련시키지 않았다면 독수리로 태어나서 병아리로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정말 독수리로 태어나서 병아리로 일생을 마치는 것처럼 능력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서 무기력하게 두려움 가운데 벌벌 떨면서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세상을 살다가 떠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능력을 입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의 음성에 이끌림을 받을 때 정말 두려움이 물러가고 귀한 열매를 맺어서 기뻐하며 주인 오기를 기다리는 여러분이 될줄 믿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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