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영상교제 말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창세기 6장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우리가 잘 아는대로 노아 홍수 당시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귀를 가지고 있지만 그 귀로 세상 이야기를 듣는 귀는 굉장히 밝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는 전혀 없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뜻하신,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이 섭리하신 그걸 알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다 보면 결국 하나님과 먼 거리에 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에 굉장히 어려운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창세기 6장을 보면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한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어야 하고 들을 수가 있어야 방주도 만들 준비를 하지,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상태 속에서 어떻게 방주를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다른 모든 사람이 멸망한 것처럼 노아도 그냥 홍수 당시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고 평소에도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았다는 걸 잘 알 수가 있는 거지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그전에 보면 창세기 6장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하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에 6절에 보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해서 이 모든 걸 멸하고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걸 알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까 그냥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시집 가고 장가 가고 사고 팔면서 그냥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노아가 들었을 때 ‘아 하나님이 세상을 땅과 함께 멸하시는구나.’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노아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방주를 만들고 그 모든 걸 준비할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참 많은 형제 자매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인도가 없이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지 않고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가 없어도 ‘내가 정직하게 살면 되겠지, 내가 부지런히 전도하면 되겠지,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사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한다고 해도 조금씩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져서 하나님과 전혀 다른 세계 속에 머물러 있는 걸 우리가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 홍수 당시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노아와 그 다른 사람들인데 노아와 그 다른 사람의 차이가 뭐냐? 노아는 죄를 짓지 않았느냐? 노아는 정말 나쁜 짓 하지 않고 육신의 욕망을 따라 흘러가지 않았느냐? 아니라는 거지요. 노아가 나중에 홍수가 마친 뒤에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취하여 누워있는 그런 모양을 보면 노아가 인간적인 면으로 뛰어나거나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무질서한 사람이란 걸 우리가 알 수 있는데, 그런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방주를 만들 수 있었느냐 하면 바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고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나 하나님의 말씀의 이끌림을 받기 전에는 별 수 없이 우리 인간의 욕망이나 육신의 생각을 따라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인도가 여러분 속에 없을 때는 여러분이 인간적인 면으로 제일 선한 길로 쫓아간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사사기에 나타나는 말씀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선한대로 행하였더라.”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 선, 자기 소견에 선한 것은 그들 볼 때는 선한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사사기의 문란하고 무질서하고 사사기의 마지막에 보면 진짜 더럽고 아주 무질서한 모양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자기 소견에 선한 것의 결국은 그렇게 되어간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우리가 완벽해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착실해서 신앙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성실해서 신앙 생활하는 게 아닙니다. 착실한 사람도 그 착실이 빗나갈 수 있고 성실한 사람도 그 성실함이 빗나갈 수 있고 완벽한 사람도 실수할 수 있지만 매일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그들이야 말로 바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나를 온전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지금은 온전한 것 같고 각오를 하면 될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 비뚤어 간다는 것입니다.

종종 사역자들 가운데서 비뚠 길을 걸어가고 사역자들 가운데 시험에 빠지고 문제 있는 사역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그들은 자기를 믿고 있었고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따라 흘러갔지, 자기가 연약하고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인도가 없다면 나는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는 자기를 믿지 않고 자기를 불신하고 하나님을 믿는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꼭 함정에 빠지고 정말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나는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인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계획이나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이걸 우리가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일어나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 속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든든히 서 있을 때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을 수가 있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내가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홍수가 올 걸 알았겠습니까? 노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방주를 예비 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따라 자기 계획을 따라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 생각과 달리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 뜻에 이끌림을 받다 보면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도 받고 어려움도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를 입으므로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얻었더라.” 그리고 다음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하고 말했고 그 마지막에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한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가서 ‘참 그렇구나. 홍수가 오겠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노아 마음에 있어서 노아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졌을 때 순종하는 게 자연스럽고 “노아가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런 일을 우리가 들을 수 있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의 계획이나 여러분의 어떤 수단이나 방법이 여러분을 이끌어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이끌어 간다면 바로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는 여러분이란 사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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