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영상교제 말씀
룻이 간 복된 길


룻기 1장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룻기서에서 나오미의 아들, 말론과 기룐이 결혼을 했는데 룻과 오르바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엘리멜렉도 죽고 말론도 죽고 기룐도 죽었기 때문에 룻과 오르바는 동서지간이면서도 아주 같은 운명 속에 있었습니다. 외국 남자와 결혼했고 남편이 죽었고 또 같은 시모를 모시는 그런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거의 다를 바가 없어 보였고 또 그들은 참마음으로 시어머니를 섬기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룻기 1장에서 똑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가다가 14절에서 오르바하고 룻하고 운명이 나누어지는 이야기가 여기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뒤로부터 오르바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들을 수 없지만 룻은 시모를 좇아서 보리타작할 때 베들레헴에 갔는데, 보리 베기 시작할 때 들어가서 보리타작하는 날 보아스와 만나서 그들이 사랑을 하게 되고 곧바로 결혼해서 오벳을 낳고 생각할 수 없는 축복된 일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막 이어지는 걸 볼 때 너무 신기하고 놀랍다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오르바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거의 비슷하게 시작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어떤 사람은 믿음에 도달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에 도달하지 않는 그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면 왜 오르바는 시모하고 입맞추고 이별의 키스를 하고 자기 곳으로 가고 룻은 왜 시어머니를 따랐던가 하는 그 문제를 저는 깊이 생각을 해 봤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참 비운의 여자였지만 오르바도 룻과 같이 남편도 잃고 자식도 없이 그냥 살았는데 오르바 마음 속에 마지막에 시어머니 나오미가 모압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시어머니가 강권하기를 “너희들 돌아가라. 나에게는 소망이 없다.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너희 남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느냐? 그러니 돌아가라. 너희들로 인하여 내 마음이 더 아프다.” 그렇게 강하게 돌아가라고 권했을 때 두사람 다 어머니를 쫓아가다가 어떤 결정적인 시기가 딱 되어서 오르바는 이제 어머니를 떠나더라는 거지요.

그럼 왜 오르바가 어머니를 떠나게 되느냐? 그 이야기는 이 성경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마는 그 룻은 가야할 데가 전혀 없고 소망이 없으니까 시어머니를 따르게 되지만 오르바는 자식도 없고 남편도 죽고 다 망했지만 그래도 오르바는 어디가면 아마 친정 오빠가 있는지, 친정아버지가 있는지, 가면 잠잘 곳도 있고 밥 얻어먹을 곳도 있는지, 자기에게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어떤 뭐가 하나 있었다는 거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고비가 있는데 그 고비를 넘어서 바로 1장에서 어려운 고비가 지나고 2장부터 보면 1절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보아스가 등장하고 2장부터 룻이 축복의 길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죽 나오는데 그러면 이제 여기에서 우리가 자세히 보면 오르바는 축복의 길 앞에서 버리고 떠나갔다는 거지요.

여러분 사무엘상을 읽어보면 마지막 부분에 다윗이 시글락 성에 살 때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불질렀을 때 그들이 ‘우리 다윗 돌로 때려죽이고 우리 길로 가자’고 했어요. 그리고 난 뒤에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다윗이 왕이 되는 광경이 성경에서 목격이 되거든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다 지나다가 축복의 동산 바로 직전에서 사람들이 하나님하고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지요.

그런데 오르바가 왜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다른 게 아니라 룻에게는 기대할 소망이 전혀 없는데 오르바는 ‘그래도 내가 가면 룻하고는 달라.’ 좀 괜찮은 뭐가 하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속에 살아 역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 말고 기대할만한 게 아무 것도 없고 소망이 없어야 우리가 어려워도 주를 바라보게 되고 그때 주님이 우리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데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예수님 말고 기대하고 마음을 두는 게 참 많은데 주님은 그것들을 다 무너뜨리고 주님만 바라보도록 하신다는 거지요.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나는 이제 주려죽는구나’ 그런 위치가 되어야 돌아오지, 자기가 조금이라도 밥을 먹고 잘 살 수 있었다면 돌아왔겠느냐는 거죠. 그처럼 이 오르바는 자기가 다 망했으면서도 자기가 기대할 만한 것들을 하나 둘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 그래 마지막으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소망, 그게 다 무너져서 아무 것도 없을 때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데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사단이 넣어주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실 소망이 아닌 것을 소망으로 잡고 주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걸 따라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힘있게 일을 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르바가 얼마나 불행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룻처럼 자기가 기대할만한 게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바랄 게 없다면 그냥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텐데, 베들레헴에 돌아오는 그길, 축복된 그 떡집에 양식이 풍성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그 길은 마치 탕자가 양식이 풍족한 아버지 집에 오는 것과 똑같은 길인데 자기의 기대나 소망이 다 무너져야지, 자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자기를 소망할 수 있는 것이 손끝만한 것이라도 남아있으면 안되는 거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해보면 다 망했는데도, 정말 기대할만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도 사탄은 그 속에 기대를 걸 수 있는 적은 걸 하나 둬서 주님께 기대를 두지 아니하고 마귀는 거기에다 기대를 두게 해서 주님이 역사하는 걸 막는 그런 경우가 너무너무 많더라는 것입니다.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아마 오르바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하고 동서는 운명이 똑같지만 그래도 나는 동서보다는 나아. 동서는 갈 데가 없지. 그러니까 시어머니를 좇아서 기대할 수 없는 베들레헴에 들어가겠지.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아. 그래도 나는 가면...’ “그래도” 하는, 예수님 말고 기대할 만한 그것이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고 떡집으로, 양식이 풍성한 길, 은혜가 풍성한 곳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린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 외에 소망이 없고 예수 외에 길이 없고 예수 외에 방법이 없어야 하는데 사단은 우리에게 예수님 가까이 나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 말고도 괜찮은 그런 길들을 많이 만들어둬서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한다는 거지요. 이제 여러분 속에 예수님 말고도 기대를 둘만한 것이 있다면 사단이 준 것인데 그걸 다 저버리고 ‘이건 사단이 나를 망하게 하는 거야. 이건 내가 기대할 게 아니야.’ 예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기대를 두면 여러분이 룻처럼 복된 길을 가게 될 줄 알아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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