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갑갑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이제 얼마 안있으면 이라크전쟁이 시작됩니다...

아니 전쟁이라기 보다는 첨단무기를 동원한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됩니다..아프간전쟁때 죽은 미군병사는

5명이었지만 아프간의 사망자는 군인을 제외하고 민간인의 사망자만

수만명이라고 합니다...빈대를 잡기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명분은 빈라덴을 잡기 위함이었지만 사실상의 이유는 미국이 확보한

중앙아시아의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의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함이란게

공공연한 이유입니다..반미정권인 탈레반정권이 제거되면 아프간을 통해서

안전한 수송로를 확보할수 있으니까요...

이라크의 경우도 명분은 미국과 세계에 위협을 주는 후세인정권을

제거하기 위함이라지만 사실상 미국이 노리는것은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워서 안전한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것이고 이런내용은

SBS나 KBS같은 국내의 보수적인 방송사들도 뉴스를 통해서 인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이라크전쟁이 발발하면 최소한 20~30만의 이라크민간인들이

죽게되고 수백만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더구나 이라크의

군사력은 걸프전이후로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고 미국의 경제봉쇄로 말미암아

전쟁을 수행할 경제적인 능력도 상실된 상태이고 또한 이라크군인들의 사기는 바닥

에 떨어져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거의 저항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머리위에 떨어지는 미국의 첨단무기들을 고스란히 받아내야할 형편입니다..

그와중에 가해자인 미군의 피해는 손으로 셀정도에 불과하겠지요...

이건 강도행위이고 추악한 범죄행위입니다...그러나 이런강도행위를

하는 주체인 부시는 기독교원리주의자로 불리고 있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있는 저는 이런 학살행위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제자신의 무기력함에 너무나 슬프고 착잡해서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길이

없습니다...과연 우리와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상관없이

여겨야 할런지요...아니면 기독교와 적대하는 이슬람국가가 당하는 일이므로

당연시 해야하는지요....

이런때에 기쁜소식선교회가 할일은 무엇이고 구원받은 이들이 할일은 무엇인지

묻고싶고 또 알고싶습니다...그저 모든걸 주님께만 맏기고 지켜봐야만 하는지...

구원이 행위에 있지 않다고 하지만 반전의 목소리가 전세계적으로 커져가고 있는

지금 구원받은 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아래는 걸프전으로 희생을

당하고 또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이번전쟁에 닥친 한 이라크소녀의 호소문입니다...걸프전때 미군이 쏟아부은

열화우라늄탄으로 이라크전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고 그로인해 이라크의

기혀아 출산율은 세계평균의 6배이며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각종암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봉쇄로 의약품조차 구할수 없어서 그저 죽음만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런데 이런아이들의 머리위로 또 다시 폭탄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솔직한 제심정은 신의 이름으로 추악한 전쟁을 하려는 부시의 가슴에

총탄을 먹이고 싶은 분노로 가득합니다...그리고 무기력한 제자신이

서글플뿐입니다...





"여러분은 내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 전쟁속의 아이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진보적 주간지 WireTap 인터넷판 3월 5일자에 게재된 샬롯의 호소, What About the Iraqi Children? 을 소개한다.

지오리포트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00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이라크에는 1천200만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는 열 세살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을 수도 있고, 저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고, 남자 아이일 수도 있고, 저처럼 붉은 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와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리 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 16일 바그다드의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 `스마트` 폭탄에 살해당한 300 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그날 공습으로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고, 벽에 몰려 있던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형체도 없이 타버렸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돌더미에 붙어 있는 시커먼 살조각을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 순간 바그다드의 어린이 병원의 `죽음의 병실`에 있는 열 네 살의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 겁니다. 알리는 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라는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 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무스타파는 단돈 25달러밖에 안되는 약만 있으면 완전히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라크에 취한 경제봉쇄 때문에 이라크에는 약이 없습니다.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1991년 여러분이 이라크를 폭격했을 때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만의 아버지는 온 가족을 한 방에서 함께 자게 했습니다. 모두 다 살든가, 아니면 같이 죽고 싶어서. 살만은 아직도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면 저는 걸프전이 벌어졌던 세 살 때 여러분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 동안 매일같이 아버지 무덤에 덮힌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ꡒ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ꡓ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버지를 가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니면 전 걸프전이 벌어져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밤을 샐 수 있었다고 좋아했던 루아이 마예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루아이는 지금 학교에 갈 수 없어서 길에서 신문을 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바로 여러분의 아이들이거나, 아니면 조카나 이웃집 아이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들이 사지가 절단되어서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아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도 없고 편안하게 해줄 수도 없이 그냥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딸이 무너진 건물의 돌더미에 깔려서 울부짖고 있는데,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이들이 자기 눈 앞에서 여러분이 죽는 걸 보고 나서, 굶주린 채로 혼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액션 영화도 아니고, 공상 영화도 아니고, 비디오 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이라크의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최근에 한 국제 조사단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지금, 아이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라크를 방문했습니다. 조사단이 만나 본 아이들 중 절반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전쟁이 뭔지 알고 있고 전쟁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다섯 살 짜리 아셈에게 전쟁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셈은 전쟁이 ꡒ총과 폭탄에 날씨는 춥거나 덥고, 우리가 불에 타게 되는 것ꡓ이라고 말했습니다.

열 살 먹은 아에사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ꡒ이라크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예요. 당신이 TV에서 아이들이 죽는 걸 보게 되면 후회할 거예요.ꡓ

저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때리거나 욕을 하지 말고, 대신에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라고 배웠습니다.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한 행동 때문에 자신이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 기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하던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게 `나`라고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에 사는 모든 아이들처럼, `우리`는 지금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그 모든 결과 때문에 고통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를 때 두렵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미래를 훔치려 할 때 화가 납니다. 우리는 내일도 엄마와 아빠가 살아있기만을 바랄 때 슬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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