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을 이렇게 시원케 해주셔서..." (듀스뜨릭 간증)
빨레라렛 듀스뜨릭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오늘 2박3일간의 도스트릭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 전도팀은 이재형 형제와 내가 발렌틴 형제의 인도를 받아 갔다.
한걸음 한걸음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첫날인 11월 10일 우리는 먼저 전날 이진규 형제와 교제 했던 찐빵 파는 정수라 할머니를 만났다. 정할머니는 연세가 80쯤 되어 보이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죄를 사하는 책을 준다고 했는데 가져왔냐고 먼저 물으셨다. 우리가 책을 건네주자 얼른 받아 품에 안으셨다. 그리고 이재형 형제와 교제했는데, 구원을 확신하고 정말 기뻐하셨고, 지나가는 할머니를 불러 이형제와 교제를 붙였다.
그동안 나는 전날 만났던 김갈리나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김할머니는 전날 빵을 들고 작은 몸으로 다소곳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얼른 쫓아가서 말씀 교제를 청했는데, 바로 가까이에 살고 계셨다.
그 집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차분하게 들으시고 복음을 받아들이셨는데, 이튿날 다시 찾아간 것이었다. 김할머니는 어린시절 원동(블라디보스톡 부근을 그렇게 부른다)에서 보냈다고 하셨다. 술에 찌들어 장가도 못간 50대의 아들을 대리고 사셨는데, 늘 그 막내 아들 때문에 근심하셨다. 다시 복음을 풀어 전해드렸는데, 여러 번 찾아가서 교제하는 동안에 그 마음에 복음이 뿌리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동네 집들은 구조가 거의 비슷하였다.
고려인 할머니가 있으면 반드시 그 뜰에 상추, 배추 등이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김할머니 집에는 닭, 토끼, 개, 고양이도 많았다. 우리를 참 극진히 대접해 주셨는데, 발렌틴 형제는 그 아들과도 교제하였다.
그날 김안나 할머니와 이필립 할아버지와도 교제하고, 정수라 할머니가 붙여준 정순옥 할머니 집에도 찾아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김갈리나 할머니 댁에서 묵었는데, 잠자리를 세심하게 챙겨 주셨다. 우리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도 김할머니와 교제를 하고 나왔다.
점심을 빵과 음료수로 먹었는데, 큰 빵 네 개가 300솜(우리나라 원과 비슷하다)이었다. 음료수는 450솜이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기도했다.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밤에 잠잘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걷다가 피곤하기도 하고 졸려 잠시 앉아서 졸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고려인 할머니들이 몇분 모여 얘기를 나누고 계셔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 중 70대로 보이는 아주 눈빛이 또렷한 할머니가 있었다. 또박 또박 자세히 물으셨고, 교제를 계속되었다. 그렇게 복음을 들으시고 분명하게 받아들이셨다. 그 앞에 옆집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갑자기 소리쳤다.
“아바이! 아바이도 천국 갈수 있소! 예수님이 죄를 다 가져갔소.”
그러면서 바로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었다. 그 마음에 복음이 너무 쉽다고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으로 초청했다. 그 할머니 집은 비교적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자식들이 다 나가고 혼자 사셨다. 저녁 식사후 계속 교제했는데, 할머니 답지 않게 좀 깊은 얘기들도 잘 이해하셨고, 아주 재밌다고 하셨다.
깨끗하고 두꺼운 이불을 펴 주셔서, 포근하게 잠을 청한 후 다음날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이라 한번씩 더 돌아보고, 들은 말씀을 정리 해 드렸다.
김갈리나 할머니 마음에 복음이 분명하여 참 감사했다.
그곳에는 타쉬겐트만민교회라는 큰 교회가 있었는데, 물론 고려인들 외에는 전도 못하도록 법의 규제가 있었다. 그곳 전도사를 만났는데, 예수님이 모든 죄를 다 사하셨다고 하면서, 지은 죄는 용서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을 이론적으로만 들어간 것이 오히려 그 마음을 막고 있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계속 다니던 중 어느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우리는 말을 걸었는데, 우리를 안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정수라 할머니의 딸이었고, 우리를 기쁘게 맞아주었다. 그 집에 정할머니도 계셨는데, 우리가 이제 한국 돌아간다니깐 아쉬워 하면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 아주머니는 이름이 방루샤인데, 역시 그곳 만민교회에서 사람 차별하는 것에 회의를 느껴 교회 나가지 않고 있었다.
우리말에 서툴러도 복음을 풀어 전했는데, 다 듯고 아직 풀리지 않는 부분이 바로 지은 죄를 계속 용서빌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이 아주머니 역시 그 교회의 가르침에 혼돈하고 있었는데, 요한1서 그 말씀을 풀어주고, 주님이 온전히 다 이루신 부분을 전해줄 때, ‘아! 이제 알겠다’고 하면서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집 할머니와 그 딸까지 구원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그곳 교회에서는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인사하고 나올 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제 마음을 이렇게 시원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떠나 오면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귀한 심령들을 만난 것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고 부족한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셨고, 또 우리와 분명히 함께 하셔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이 우리를 감격케 하였다.

처음 계획대로 다시 타쉬켄트 교회로 돌아왔는데, 다른 팀들도 간증이 가득하였다.
우리 팀 간증보다 더 풍성한 간증들이이 많았다.
류의규 선교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러시아 선교에 3~4년만에 일어날 역사가 이 곳에는 몇일만에 일어났습니다.”
박영철 선교사님은 전도팀을 통해 복음이 전해진 곳들을 혼자 다 감당할 수가 없다고, 기쁜 하소연을 하셨다. 그리고, 계속 전도팀이 올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제 다시 카자흐스탄 알마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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