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영상교제 말씀
정결케 되는 길이 있구나


레위기 14장 1절 ∼ 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찌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명하여 정한 산 새 두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저는 여러분 아시는대로 나환자촌에 가서 오랫동안 전도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나환자들의 생리도 잘 알고 또 나환자에 대해서 저는 좀 알고 있습니다. 여기 레위기 13장 14장에서 특히 문둥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문둥병에 대한 이야기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14장에 들어와서 "문둥 환자가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하고 이 이야기를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둥병을 불치병으로 여기고 굉장히 무서워했습니다. 저희들이 어릴 때만 해도 문둥병 걸리면 낫는 게 불가능하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발목이 끊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었는데, 이 문둥병은 치료를 하는 약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운 게 문둥 병균이 사람 몸 속에서 나오면 3초안에 금방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신이나 그걸 만들기 위해 병균을 배양해서 연구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문둥병을 치료하는 게 상당히 늦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도 그랬고 레위기는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인데, `과연 문둥병에 걸려서 치료를 해서 나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 분명히 문둥병이 걸려가지고 나았다는 기록은 하나님 외에 예수님 외에 구약의 나아만 장군이나 또 열 문둥병자 이런 사람들 외에 전혀 없는데,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문둥병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 당시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겠느냐 하는 거죠. `이건 말도 안 돼. 문둥병이 나아야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가 필요하지, 낫지도 않는데 무슨 문둥병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가 필요해?` 아마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을 할 거라는 거지요.

그러나 정말 하나님은 "문둥병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하는 그 이야기는 인간적인 면으로 문둥병이 나을 수 없는 병이지만 정결하게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고 `아 레위기 14장을 읽어보면 분명히 문둥병도 나을 수가 있구나. 정결케 되는 수가 있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규례를 정했구나. 그렇다면 내가 가진 이 문둥병도 하나님 은혜를 입으면 나을 수 있겠구나.` 그런 믿음이 일어날 수 있는 말씀을 지금 하고 있는 거죠. 14장 2절 말씀이.

그러니까 사람들은 문둥병이 낫는 게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는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문둥병자가 정결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에요. 만일에 문둥병자가 한 사람도 정켤케 될 수 없다면 정결함을 받는 규례라는 게 전혀 필요 없을 것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드시 문둥병은 정결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다 주는데,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에이 그게 뭐 낫겠나?` 이렇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음을 입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 들었을 때에 그 계집종의 마음에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 믿음대로 나아만 장군이 와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신약에 그 말씀을 하셨죠. "선지자 엘리사 시대 때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나음을 입지 아니하고 수리아 땅에 나아만 장군 하나만 나았다" 왜 그랬을까? 엘리야는 그들의 문둥병을 고칠만한 능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당시 이스라엘에 참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칠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도 않았고 은혜도 입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면 지금 우리가 가진 이런 마음들은 어떤 마음이냐 하면 우리가 형편을 보고 `이건 안 될 것 같애. 문둥병이 어떻게 나아? 이건 안 나을 거야.` 그런 마음 안에서 우리는 그만 형편대로 머물러 버리려고 하는 우리 마음에 `아니야. 그 문둥병이 나을 수 있어.` 하는 소망을 가져다 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4장 2절 말씀이. 왜냐하면 문둥병이 전혀 나을 수 없다면 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가 아무 필요가 없죠. 낫지 않는데 무슨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를 세우시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문둥병이 나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린 문둥병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난 이번에 태국에 가서 캄보디아 형제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형제는 옛날에 폴포트의 부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사람이 폴포트 부하로 있으면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러고 난 뒤에 나중에 폴포트 부대가 산으로 쫓겨 들어가면서 몇 년 동안 산 속에서 짐승과 같이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나중에 내려와서 택시 운전을 하면서 살았는데 이분이 죄에 대해서 그렇게 큰 가책 속에서 고통하며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우리를 만나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그런 걸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지요. 그래 나는 이번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야 우리 선교회는 살인수도 와서 구원받아 종이 되고 또 러시아 같은데 가면 마약환자, 권총강도, 이제는 킬링필드의 폴포트의 부하도 구원을 받아 주의 종이 되고 참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로다 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 마음은 어떠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꾸 소망을 주시는데 우리는 형편을 보고 `이건 안될 거야. 안 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 `야 문둥병 나은 사람이 어디 있냐? 한번 생각해 봐라. 그건 안 돼.` 그러면 안 되는 거에요.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레위기 14장 2절에서 문둥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을 주고 가능성을 이야기해 주고 또 이제 엘리사로 말미암아 나아만 장군이 나음을 입고 또 문둥병자가 나음을 입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이런 말씀을 가지고 엘리사의 계집종처럼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서면 그 병을 능히 고치리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일할 때,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며 은혜를 베풀 줄로 믿는 것입니다.

이 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규례를 이야기하는 건 인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정결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고 내 생각 속에 빠져서 죽어버린 문둥병 환자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들이 정말 레위기 이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여기 정결케 되는 길이 있네요. 나도 정결케 해 주세요.` 했으면 그들이 은혜를 입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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