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영상교제 말씀
간절한 마음도 주님으로 말미암고


마택복음 15장 32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로 내가 하나님 앞에 좀 부족하다 태만하다 내가 너무 육신적이다 그렇게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아마 여러분도 그럴 줄 압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선교를 하다 보면 예배당 건축하는 일이나, 비자 얻는 것이나, 집회나 그런 일에 빠져있다 보면 내가 요즘은 말씀을 읽는 것도 소홀했구나, 기도하는 것이나, 주님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이 소홀했구나 그런걸 마음에 느낄 때가 한 두 번 있지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태하거나 태만하다고 느끼게 되면 자기가 좀 더 부지런히 열심히 일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내가 좀 더 성격을 읽으려고, 내가 좀 더 기도하려고, 내가 좀 더 말씀 가까이 가려고 하지요. 그러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나를 끌어 성경 속으로, 기도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뉴욕 방송 설교할 때 이 마태복음 15장 말씀을 인용하면서 제 마음에 은혜로운 부분이 있어서 오늘 읽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절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말하기를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의 유전을 지키지 않습니까. 떡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다고 얘기하면서 비난하는 거지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실 때 항상 가까이 있지만,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항상 자기가 기준이 되어서 자기가 보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생각하는 그것이 기준이 되어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비난을 하게 되는 거지요.

마태복음 15장 앞부분에 그렇게 시작이 되었는데 32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
주님이 이들을 이끄셔서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하면, 이들이 기진할 정도로 굶주리게 된 거예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보리떡 7개를 가지고 4천명을 먹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흘동안 아무 음식을 먹지 못한 이 사람들에게 떡을 주었을 때에 이들이 거부했겠습니까 먹었겠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다는 거지요. 마태복음 15장 1, 2, 3절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마태복음 15장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를 보면 생명의 떡을 맛있게 받아먹는 이야기로 나온다는 거지요.

이들이 어떻게 생명의 떡을 그렇게 간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변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동안 이들과 같이 있으면서 아무 음식이 없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을 음식을 만든 주님인데 잠시동안 떡을 만들어 먹게 하실 수도 있었을텐데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가 어디 있느냐면, 그들로 하여금 굶주리게 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떡을 사모하도록 만들어 줬다는 것입니다.

내가 태만해, 내가 주님 앞에 나태해, 좀 더 잘해야겠어 이런 마음을 갖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도 내가 겸손해지고, 내가 태만한 걸 고치고, 내가 말씀과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서 배고픔을 느낀다는 거지요.
마태복음 15장 앞부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중심과 자기 생각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고, 마태복음 15장 뒷부분에 있는 사람들은 떡을 맛있게 받아들이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됐냐면 주님에 의해서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지요.

우리는 전부 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내 기준으로 내 생각을 따라 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들 교회 형제들이 복음을 전하러갔다가 다리 밑에 있는 거지한테 복음을 전했어요. 이 거지가 우리교회 까지 따라왔어요. 형제들이 기뻐서 거지에게 헌 옷이지만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우리 집에 같이 살도록 했어요. 이 거지가 한 2주쯤 있다가 여기 도저히 불편해서 못 살겠다고 하면서 다리 밑으로 다시 돌아갔어요.

우리는 그 거지를 위해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해주고 옷을 주고 그랬는데, 거지는 굉장히 불편해 했어요. 있으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못 있겠다고 하면서 다리 밑으로 돌아 간 거예요. 이해가 잘 안가지요. 거지들이 다리 밑에 살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다리 위에 차들이 지나면 먼지 나고, 시끄럽고, 벌레 있고, 눅눅하고, 더러운 냄새가 나는데 깨끗한 방에 와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안 그렇다는 거지요. 왜요? 우리가 느끼는 다리 밑하고 거지가 느끼는 다리 밑은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어요. 거지가 되어도 다리 밑에 한 달 두 달 살면서 우리가 느끼는 다리 밑 같으면 거기 못 삽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다리 밑인데도 살만해요. 늘 시커먼 물이 흐르고 더러운 냄새가 나도 한 두 달 지나면 그 냄새 안나요. 그리고 위에 차가 시끄러운 것도 아무렇지 않고 너무너무 편한 거예요.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여기 오니까 귀찮아 못살겠는 거예요. 다섯시 반 되면 다 새벽기도 간다고 일어나는데 혼자 누워 있을 수도 없고. 다리 밑에 있을 때 누가 뭐라고 하나 아침을 아홉 시에 먹고 싶으면 아홉 시에 먹고, 열두 시에 먹고 싶으면 열두 시에 먹고. 그런데 여기는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고 일어나 청소하고 그러니까 불편해서 도저히 못 있겠다고 다리 밑에 간다는 거예요.

다리 밑에 사는 사람들이 보는 다리 밑 기준하고 우리가 보는 다리 밑 하고 전혀 다릅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교만하고 악하고 거만해도 내가 보는 나하고 주님이 보시는 나하고 달라요. 우리가 다 교만하다고 하고, 나 교만해, 나 음란해, 나 거짓돼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내가 거짓되고 악하고 음란한 그걸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만큼 더러운 죄인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보는 그런 눈을 가지면 우리가 이렇게 안 살지요. 우리가 죄인인줄 아는데, 예수님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우리 마음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아 우리가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구나 그 정도는 알지만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다고 느끼는 그 마음은 주님이 가진 마음하고 우리가 가진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도 죄에 쉽게 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기준으로 보니까 자기 잘못된 게 없어요. 거지들이 모두 얼마나 냄새납니까. 우리가 볼 때 냄새가 나지만 거지는 더러운 냄새를 전혀 못 느끼는 거예요. 제가 일본 오사카의 거지교회에 가서 사흘동안 집회를 했었어요.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물컵을 갖다 주는데 도저히 못 마시겠더라고요. 집회 마치고 그곳 목사님이 수고했다고 5만엔을 주는데 이걸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안 받으면 거지 돈이라고 안 받는다고 할까봐 5만엔을 받았어요. 거지한테 돈 받은 사람은 아마 나 밖에 없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간절하게 말씀을 읽어야겠다 그것도 틀린 신앙이에요. 기도를 해야겠다 전도를 해야겠다 그것도 틀린 신앙이라는 거예요. 주님이 나로 하여금 말씀을 읽게 하셔야지, 주님이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셔야지, 주님이 나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셔야지요.

여기 주님이 마태복음 15장 앞부분에서 자기 속에 충만해서 말씀 안 듣고 거역하는 이 사람들은, 주님이 사람의 속에 나오는 것은 더러운 것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주의 말씀에 보면 가나안 여자, 자기 딸 귀신 들린 여자가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 그들이 배가 고파서 떡을 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먹도록 해 놓고 떡을 만들어 주시더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를 섬기며 사는 동안 정말 중요한 것은 간절한 마음도 주님으로 말미암아야 하고, 기도도 주님으로 말미암아야 되고, 성경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하시도록 맡기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하려면 뭐가 잘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면 되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15장에 4천명의 무리를 배가 고프게 해서 음식을 간절히 먹게 하는 것처럼,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거절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사람을 그렇게 바꾸시듯이 주님이 우리를 배고프게 하시고 가난하게 하시면 우리 마음이 낮아져서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때문에 그 모든 게 내가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다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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