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354. 예수님을 보시는 하나님
제가 한번은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 서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해 주시면,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그런데, 저는 그 때 제가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만, 다행히 집회가 있어서
하나님의 종의 말씀 앞에 제 모습이 비추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서 그때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저울질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내게 은혜베푸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는데, 나는 마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양 사단에게 속아서 무엇을 해서
- 즉 행위를 들고 -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마음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나의 육에서 나온 더러운 마음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세우기 위한 것일 뿐이지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인간에게서 나온 어떤 것도 받으실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나는 하나님이 내 영혼을 취해 가시면 그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는 인생이며, 하나님은 그러한 나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으시며 오직
내가 구원받을 때 내 안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게 나를 맡기시고 부탁하신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이 복음을 맡기지 않고, 성령에게 맡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또, 얼마 전에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하는 말씀에서 내가 어떠한 모습에 있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종의 말씀이 제 마음에 은혜가 되어서 연결시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가 자신의 독자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타인을 대신해서 내어줄 부모가 있습니까?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복음을 들은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러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속에 젖어 있던 마음이 점점 식어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사랑을 다시 계속해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녀들을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 남겨두는 이유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짜 생명이 없는 일반 교회나 정말 거짓 선지자가 세운 교회들은 저렇게 전도를 열심히 해서
잃어버려진 불쌍한 심령들을 지옥으로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데, 정작 생명이 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친히 교회 가운데 역사하심을 무수히 듣고 보고 있는 우리 거듭난‘그리스도인’들이
그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고 형편앞에 또 자기자신의 연약함에 매여 있다면, 그것은 이 생명의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는 저 불쌍한 심령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자를 그것도 그냥이 아닌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도록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출애굽기 6장 11절 부터 12절까지를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강팍한

“바로 앞에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어 보내게 하라”

고 말씀하시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도 나를 듣지 아니하였는데 바로가 어찌 듣겠습니까”

하면서 자신은 입이 둔한 자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13절에 보면 모세에게는 믿음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셔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왕 바로에게 명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출 6:13)

하고, 비록 모세의 입이 둔하고 바로가 강팍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어서 ‘모세로 하여금 바로에게 명을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 부터 15절 까지의 말씀을 15절 부터 꺼꾸로 보면,

“교회의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면 그 말씀을 듣는 자가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그래도 전도를 좀 해 본 형제자매님들의 식어져 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목소리를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로 뒤이어서 기록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 10:16-18)

하나님이 ‘복음을 전파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 내 보기에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그 약속을 교회를 통하여 신실하게 이루셔서 땅 끝까지 복음이 이르게 하셨고,
구원받는 심령이 곳곳에 더하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하나님의 약속을 친히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데
동참하게 되면, 여러분의 모습과 상관없이 심령들 가운데 살아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안돼’하는 마음이 드시는 분들은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하는 말씀을 듣고 부자 관원이 근심하며 떠나간 이유는 ‘자기소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 소유가 별로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다면 얼른 팔고 예수님을 따라갔겠지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그 말씀대로
그 부자 관원에게는 하늘에서 보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들이 내게 능력이 되고 유익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을 거기에 싣고 믿음을 화합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4장 2절 말씀을 보면,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 4:2)

하나님이 교회와 종들을 허락하신 것은 자매님(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자)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 무리 가운데서 인도를 받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겠는지요. 자매님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종들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화합한다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렘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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