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영상교제 말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달려나갈 때


룻기 1장 16절, 17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에게는 두 며느리가 있었는데, 하나는 룻이고 하나는 오르바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이 두 사람은 외국인인 이스라엘 나오미의 아들 말론과 기룐과 결혼해서 살다가 두 여자가 다 남편을 잃고 젊어서 혼자되어 자식도 없는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오미나 룻이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남이 볼 때는 나오미나 룻이 똑같은 운명이고 남편 잃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아무 소망 없는 그런 여자지만 그러나 남이 볼 때 그렇지, 그 세계 속에 들어가 보면 오르바는 룻보다 좋은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르바에게는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은 괜찮고 또 살만한 길이 있었고 룻은 전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위치인데도 오르바보다 많은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은 아무 소망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보면 나오미라고 하는 여자가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올 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그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을 때도 하나님을 찾은 일이 없었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었을 때도 전혀 하나님을 찾지 않은 믿음이 없는 여자인데도, 룻이 아무 소망이 없고 정말 기대할 게 없으니까 정말 믿음이 없는 나오미에게서 룻은 하나님을 찾더라는 것입니다.
오르바와 룻이 똑같이 한집에 살고 있지만 룻은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했는데, 오르바는 하나님 없이 여전히 세상적인 사람이라는 거죠.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나오미에게 오르바와 룻이 똑같이 존재하는데, 다시 말하면 육신적인 마음과 영적인 마음이 같이 존재한다는 거죠.
그런데 언제 나오미 속에 육신적인 마음이 떠나고 영적인 마음만 거하게 되느냐?

이제 나오미가 모압을 떠나서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으로 베들레헴으로 향해 가려고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물론 베들레헴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지만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를 영접해주고 환영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베들레헴에 간다고 해서 집이 있거나 양식이 있거나 그런 게 전혀 없기 때문에 실제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모압에는 지금까지 살던 집이 있고 두 자부가 자기를 돌봐주고 그렇기 때문에 모압에 사는 삶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모압에 사는 이 삶 자체가 저주인 사실을 깨닫고 이제 나오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 베들레헴을 향하여 나오미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때,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베들레헴에 기대할 건 아무 것도 없었고 오히려 모압을 떠나기가 두려웠는데, 저주의 길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는 그 길 속에 이제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향할 때에 그 두 자부의 마음이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면으로 볼 때 오르바도 나오미를 따르고 룻도 나오미를 따른 것 같지만 실질적인 면으로 보면 이제 그들의 마음이 드러나는데 믿음을 가진 룻은 나오미를 따를 수 있지만 세상적인 여자 오르바는 표면적으로 나오미를 따른다고 했지만 자기 정욕과 욕망을 따라 돌아가는, 나오미를 떠나는 모양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동역자 여러분들이 그냥 평범하게, 마치 나오미가 모압에 살던 것처럼 여러분이 그렇게 살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같이 존재할 수 있지만 세상적인 것 것을 기대할 게 전혀 없고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나가려고 할 때, 여러분 마음에 육신적인 생각이 다 떠나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향해 가긴 가지만 베들레헴에 농사지을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곡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거할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살길이 막연하지만 하나님만을 향해 나가는 그 믿음의 마음을 가졌을 때, 룻은 정말 끝까지 나오미에게 있는 믿음을 같이 했기 때문에 따라갈 수 있지만 오르바는,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여자는 자기 정욕을 따라 떠나버리더라는 거지요.

복음을 위해 산다고 하는 우리 마음에도 꼭 나오미에게 오르바와 룻이 있듯이 우리 마음에도 영적인 마음과 육신의 정욕적인 마음이 같이 있는데, 육신의 정욕적인 마음이 언제 우리 마음 안에서 일하느냐 하면 내가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않을 때, 육신의 정욕적인 마음이 우리 마음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내가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디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다 떨쳐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아무 소망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달려나갈 때 육신적인 생각은, 믿음이 없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나가면 망할 것 같기 때문에 절대 함께 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믿음으로 달려가지 아니할 때는 여러분 속에다가 육신적인 생각을 많이 가두어 두는 것이고 만일에 여러분이 믿음을 향해 달려나갈 때 그 믿음의 길은 육신의 길과 다르기 때문에 육신적인 생각이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롯을 데리고 갔는데, 롯이 정말 어느 날 아브라함과 도저히 같이 갈 수 없어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로 가려고 할 때 롯과 같이 갈 수 없어서 롯을 보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아브라함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오르바가 나오미를 떠난 뒤에 하나님이 룻에게 나오미에게 굉장히 귀한 축복과 은혜를 내리는 놀라운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면으로 향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향할 때는 세상적인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복이 된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나오미가 아무 기대할 것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여 베들레헴을 향하듯이 우리가 기대할게 없는 인간적인 것을 바라보지 말고 영적인 주님만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달려나갈 때, 우리 마음에 있던 육의 생각이 나를 떠나가고 신비한 생각이 나를 이끌어 나와 함께 복음의 길을 힘있게 할 줄 믿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한, 베들레헴에 정말 보아스가 준비되어 있고 곡식마당이 준비되어 있고 모든 게 복을 누리는 것처럼, 여러분도 믿음으로 복을 누리고 은혜롭게 살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오늘 저녁 페루에 가서 페루에서 집회를 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집회하면서 또 여러분을 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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