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영상교제 말씀
우린 이미 능력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 6절 ∼ 8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세상에 우리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육체를 통해서
일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기 전에 모세를 길렀고, 예루살렘 성전을 쌓기 전에 먼저 다윗을 준비해서 성전을 쌓을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하셨고, 계속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준비해서 복음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오는 그런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서 잘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도 하나님 일을 하시려고 준비를 하셨다는 거죠. 그런데 이제 문제는 그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일을 하기 원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도 같은 마음으로 진행해 나갈 수 있는 그 자체가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런 일이 있기 불과 얼마 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통곡하고 실망하고 갈릴리 바다에 다시 고기 잡으러 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고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마음이 달라졌다는 거죠. 어떻게 달라졌느냐? `내게도 살아 계신 예수님이 역사하시겠구나.`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이 들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능력은 가득 있지만 우리 속에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다는 거지요.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나 바울의 역사 가운데 대부분이 그러했습니다. 먼저 그들 마음에 하나님이 일을 하시겠다는 그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달려나갔을 때, 하나님 그 믿음을 따라 역사한다는 거지요.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치는 거나, 죽은 도르가를 살리는 거나, 이런 역사들이 있을 때, 그 베드로에게만 바울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은 우리 안에 능력을 능히 행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그걸 내가 확인해 가지고 확인이 된 뒤에 능력이 내게 있는 줄 아는데, 믿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내가 구원을 받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셨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 나사렛 예수하고 조금도 다름이 없는 똑같은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난, 그 나사렛 예수 몸에 역사하던 똑같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나사렛 예수 안에 역사한 것과 똑같이 우리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합니다만, 우리의 생각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사로잡힌 자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자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내 생각을 따라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계신 걸 믿는 믿음과 그 주의 이끌림을 따라 살 때, 우리는 곧 작은 예수가 된다는 거죠. 그러면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역사하셨던 것과 같이 똑같은 역사를 우리를 통해서 나타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볼 때 `손을 잡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말했을 때, 만일에 베드로 마음에, `아이구 이렇게 해 가지고 안 일어나면 어떡하지? 내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내가 이렇게 허물이 많은데, 예수님 내게 역사하시려나? 안 하면 어떡하지?` 아마 베드로 마음에 충분히 그런 생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그런 마음을 넣어줬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마음에 그런 생각이 일어나고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 즉시 또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이 들렸다는 거죠. 항상 베드로가 실망을 해서 디베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갈 때, 예수님이 또 따라가셔서 실망한 베드로에게 소망을 넣어주시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일하려고 하면 항상 사단은 `안 돼` 절망적인 마음을 우리 속에 넣어준다는 거죠. 반대로 절망적인 마음을 넣어줄 때마다 성령은 또 우리 속에 `아니야. 내가 역사할 게.` 성령으로 역사를 한다는 거죠.

그래 우리가 사단의 음성을 듣고 절망 속에 있는 것하고 주의 말씀을 듣고 능력으로 행하는 것하고는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거죠. 베드로가 `아이구 내가 무슨 앉은뱅이를 고쳐. 나는 못 고쳐. 나는 실수가 많고 나는 연약하고 나는 부족하고 나는 안 돼.` 틀림없이 마귀가 그 마음을 넣어줬을 거라는 거죠. 그런데 베드로는 그 마음의 이끌림을 받지 아니하고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사신 그리스도가 일하지, 내가 일하느냐? 하는 믿음으로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을 거라는 겁니다.

중요한 건 우리도 똑같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단이 늘 우리에게 먼저 절망을 뿌리고 낙심되게 우리를 이끕니다. `넌 안 돼. 넌 그걸 할 수 없어. 넌 믿음이 없어. 넌 너무 육신적이야. 넌 범죄했잖아. 넌 하나님과 멀어져 있어. 넌 구원이 애매해.` 이런 소리로 사단이 우리 마음을 믿음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한다는 거죠.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은 사단의 음성을 안 들어서가 아니라 마치 하와가 뱀의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을 똑같이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뱀의 말을 믿었을 때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항상 그런 일은 이 지구 끝날 때까지 계속 되는데,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라도 사탄의 음성은 계속 들려요. 또 주의 성령의 음성도 들립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사탄을 불신하는 믿음으로 달려나갔을 때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중요한 건 `하나님 능력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지 말고 우린 예수님 믿는 그 순간 이미 능력을 받았습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있는데 쓰지를 못한다는 거지요. 나를 쳐다보기 때문에. 나를 잊어버리고 내 안에 살아 계신, 역사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바로 우리는 그 능력이신 예수님으로 살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사람을 고칠 수 있고 능력을 행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다가 종종 사탄에게 속아서 사탄이 여러분 자신의 부족하고 나약한 모양을 보여주면서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습디까?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나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나약하기 때문에 나약한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수밖에 없도록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걸 이루어 놓으셨다는 거지요.

동역자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면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고 사단의 권세를 밟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주님이기 때문에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살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