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영상교제 말씀
소망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


열왕기하 7장 12절
왕이 밤에 일어나 그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저희가 우리의 주린 것을 아는고로 그 진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저희들이 성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우리 IYF에 표어가 있지요. "내일 이맘때에" 그건 뭐냐하면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에워싸여서 성이 주려서 아이를 삶아먹는 그런 위치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말미암아 소망을 주었습니다. "내일 이맘때" 하는 말이지요.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나님 그렇게 말씀하시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저희들이 어릴 때, 지남철을 가지고 장난을 많이 했습니다. 별다른 장난감이 없으니까. 지남철을 가지고 모래에 있는 쇳가루도 끌어당기고 쇠붙이도 끌어당기고 그런데 이제 쇠붙이는 쇠붙이인데, 지남철이 끌어당기지 않는 쇠붙이가 있지요. 스텐이나 놋이나 구리, 백철 이런 것들은 전혀 끌어당기지 못해요. 그냥 무쇠만 끌어당긴다는 거지요.

사람들 가운데서 아무리 소망을 줘도 자기 마음 안에 소망을 담을 그릇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반대로 사람들에게 아무리 절망을 줘도 절망을 담을만한 그릇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하여튼 소망만 받아 그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절망만 받아서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했지요.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여러분 소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사람들은 그 말씀이 소망이 되어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서 내일 이맘때를 기다리게 될 거란 거지요. 사실 아무리 굶주려도 양식이 전혀 없진 않을 테니까 하루를 살자면, 내일 이맘때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면, 오늘 있는 것 다 먹어버리고 다 팔아버리면 오늘 그것 듣는 순간부터 부유한 삶이 시작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하나님의 소망된 말씀을 들었을 때에 마음 안에 소망을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말씀이 자기 마음에 소망이 되어 마음에 자리를 잡지만 소망을 담을 그릇이 없는 사람들은 그 소망이 와서 그 마음에 머무를 수가 없으니까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렇게 장관처럼 대답한다는 거지요.

우리가 잘 압니다만 문둥이 네 명이 사마리아 성문 밖에 있다가 아람 진에 항복하러 가서 거기 군인들이 없고 빈 장막, 양식, 금은이 가득 있는 걸 문둥이 네 명이 보았습니다. 그걸 보고 성중에 와서 고하니까 왕이 하는 이야기가 뭐냐하면 오늘 읽은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인데 12절에, "왕이 밤에 일어나 그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저희가 우리의 주린 것을 아는고로 그 진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저희들이 성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왕의 마음에 머물렀더라면 "야 이게 무슨 소리냐? 정말 어제 하나님의 종이 말씀한대로 진짜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는가보다. 이거 정말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빨리 아람 진에 노략하러 가자. 빨리 성문을 열어라. 백성들 다 나가서 노략하게 해라." 왕이 그렇게 말을 했어야 한다는 거지요.

안타깝게도 왕의 마음에는 소망을 담을 만한 그릇이 없었어요. 그 소망을 주는 음성을 들어도 왕에게 소망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음성을 들어도 장관에게는 소망이 되어지지를 못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걸 가지고 근심으로 두려움으로 염려로 조심으로 바뀐다는 거지요.

여러분 제가 오늘 열왕기하 7장 12절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갑자기 내 마음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구원을 받고 교회 안에 있으면서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왕처럼, 하나님이 소망을 줘도 다른 우려 때문에 소망을 담지 못하고 마음에 근심이나 두려움이나 염려를 담고 있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는 거지요.

"아니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셨고 또 하나님이 종을 통해 말씀하셨으니까 우리가 아람 진에 가서 문제가 닥쳐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실 거야." 그런 소망이 없으니까 실제로 앞에다 복을 주고, 양식을 갖다 주고, 금을 갖다 주고, 모든 걸 갖다줘도 두려워서 얻지를 못하고 벌벌 떨면서 얻으러 가지 못하는 그런 왕의 마음을 성경은 너무 잘 표현했다는 거지요.

장관이 말했습니다. 13절에, "그 신복중 하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필을 취하고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소서.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왕은 아직 자기는 먹을 양식이 있고 기회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거죠.

정말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실제로 우리 앞에 절망이 다가왔고 한쪽에 소망이 있으면 우리는 절망에서 도망을 쳐서 소망으로 마음이 옮겨져야 한다는 거지요. 그럼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한 것을 누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데, 많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왕처럼 어떤 마귀가 넣어주는 우려나 염려, 왕이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걸 믿지 못하니까 자기 생각에 `아마 아람 사람들이 틀림없이 우리를 매복하고 노릴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으로 우려로 근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닥치는 어떤 일이든지 사랑하는 하나님이 함께 해서 해결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겁니다. 나는 정말 내가 많이 우려했던 근심된 일들 가운데 하나님이 복으로 바꾸는 걸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이제 그런 믿음 없는 나지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갖다주는 소망을 마음에 담을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마음에 담아놓지 않고, 그 아람 진에 말도 그대로 있고, 사람도 하나도 없고, 양식이 많다는 그 얼마나 소망된 소리를 들었습니까? 그 소망을 마음에 담지 못하고 근심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건 사실이 아닐 거야. 아람 군인들이 들에 매복해 있을 거야. 우리가 가면 우리를 죽일 거야.` 그런 두려움으로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소망을 주지 않은 게 아니고 복을 주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과 복을 주고 사단은 절망과 화를 주는데, 하나님이 주신 걸 받을만한 그릇이 없기 때문에 사단이 주는 절망을 받아 가지고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열왕기하 7장 12절 왕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정말 이런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절망으로 두려움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단이 정말 우리에게 부어주는 절망이나 두려움을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이겨내고 믿음 가운데 달려나간다면 정말 여러분이 절망 속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고 복을 받으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서 많은 영혼을 얻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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