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영상교제 말씀
약속의 말씀이 이러할진대


요한 1서 5장 14,15절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사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다른 모든 부분에는 자신 있는 부분이 있지만, 신앙에는 "아 나 신앙에 자신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사도 바울도 그렇게 말을 못했을 것 같고 베드로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하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담대함을 잃는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그 부분을 저는 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 담대하려고 할 때, 우리는 우선 내 자신의 실수가 없는가, 죄가 없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우리의 의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 허물이나 내 잘못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담대하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담대치 못한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우리가 성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얼렁뚱땅 알기 때문에 항상 담대함을 잃어버린다는 거지요. 여기 성경에서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자, 우리가 아는 대로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기도해서 비가 올 믿음을 가지고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죠. 특히 바알 선지자 450명하고 내기에서도 그 하나님이 엘리야 보고 `네가 만일에 기도하면 내가 불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시진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나 엘리야가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주고 불을 내려주신다는 것에 대해서 손끝만큼의 의심을 갖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 나가는 엘리야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오정이 지나도록 저녁때가 되도록 기도해도 응답지를 않으니까 엘리야가 뭐라고 했습니까? `큰소리로 불러봐라. 저는 신인즉 묵상을 하는지, 길을 행하는지, 잠을 자는지` 그렇게 엘리야가 조롱할 수 있는 건 자기의 기도에 대한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한 그걸 우리들 속에 이루시길 정말 원하신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할 때 담대해야 하고, 그건 기도할 때뿐 아니라 내 삶 속에서 내가 온전해져서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우리로 말미암지 않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삶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정확하게 성경을 펴서 읽어보고 애매하다면 그냥 적당히 넘기지 말고 다시 성경을 펴서 보고 또 그러면서 담대함을 얻으라는 거지요.

제가 여러 번 간증을 했습니다만, 제가 배가 아팠을 때, "하나님 내 배를 낫게 해 주십시오. 너무 배가 아픕니다." 그때 내 마음에 무슨 마음이 드느냐 하면 말씀이 하나 떠올랐는데, "너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은 줄로 믿는다면, 내가 배가 다 나은 걸로 믿는다면, 밥도 먹고 김치도 먹어야 하는데 그럼 배가 터질 것 같은 거예요.

그때 내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성경을 펴놓고 정확하게 그걸 짚어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내가 만약에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밥을 먹는다면 죽을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다. 절대 내가 죽지 않겠구나.` 내가 정확하게 믿는다면 내 배가 낫겠다는 그런 믿음이 왔어요. 어떤 감정이 온 게 아니고 뜨거운 게 온 게 아니라.

그러면서 저는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설사가 났지요. 그건 형편이고 내가 담대함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이건 정확하다. 만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내가 죽는다면 이건 내 책임이 아니고 하나님의 책임이다. 담대함을 가지고 하루만에 내 배가 깨끗이 낫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귀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를 들어 쓰시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넣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복음을 위하여 일하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능력을 주고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8장을 선교학생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문둥병자가 나음을 입는 모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종이 중풍병에서 낫는 것을 보았고,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서 낫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파도가 칠 때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귀신들린 자를 거기서 건지는 것을 봤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있어서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그 예수와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끌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부족한 걸 아시고 우리에게 약속을 했다는 거지요.

우리가 성경을 펴서 정확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서 이 말씀이 정확하다면 애매하게 성경을 알지 말고 성경 말씀을 정확히 알고, 정확하다면 담대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는다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왜 믿느냐는 거지요. 만일에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했는데, 하나님이 듣지 않는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지요. 그 하나님 믿는 게 잘 못 되었겠지요. 그러나 진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걸 믿는다면 하나님이 결코 우리의 기도나 우리를 헛되게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요한 1서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신앙은 담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담대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은행에 통장을 가지고 있고 도장을 가지고 있고 비밀 번호를 알면 정확하게 돈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요.

그것처럼 정확하게 하나님의 약속대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면, 하늘 나라에 있는 모든 능력을 쓰기에 내가 쓰기에 전혀 주저해야 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내가 휘말리기에 전혀 주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 일을 이루시고 역사를 하실 거라는 거지요.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신앙이 가장 어려운 것은 대충 적당히 믿는 거지요. 애매하게. 그래서 참 낳은 사람들이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애매한 어떤 기대나 형편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는 거지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펴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러할진대 여러분 담대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사는 삶이 정말 복음을 위한 것이고 여러분 육체의 욕망이나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닐진대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걸 믿고 하나님이 내 속에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행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애매한 것, 성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애매한 가운데 있을 때 담대함을 잃어버리는데, 여러분이 성경을 다 모를지라도 한 절이라도 정확하게 이 말씀을 알고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이 말씀대로 응답하시겠다. 내가 망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겠다."하는 담대함을 가지고 행할 때,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나타나는 역사가 더욱 클 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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